조인경기자
2027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도출한 결과를 근거로 매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2월 설 연휴 이전에 증원 규모를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만큼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를 내놓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의료계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의료 공백의 해법부터 의사 수 부족을 산정하는 방식까지 비합리적이라는 반발이 이어지면서 의정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추계위가 제시한 2040년 의사 부족 규모는 5015명에서 최대 1만1136명. 이전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일 때 근거로 삼았던 연구들과 수치상 큰 차이가 없다.
추계 방법론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데이터의 과거 패턴을 분석해 미래값을 예측하는 아리마(ARIMA) 모형 등 통계 기법이 급변하는 의료 환경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처음부터 제기돼 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추계 결과를 존중하되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한다. 과학적 판단 뒤에 다시 정치적 판단을 얹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인구구조 변화, 기술 발전, 근무 환경, 의대 교육 여건과 질적 수준 등을 고려 요소로 나열했다. 하지만 이런 복합 변수가 정원 숫자로 어떻게 환산되는지, 어떤 가중치로 반영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빠졌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거론하며 "3년 안에 로봇이 최고의 외과 의사를 능가할 것이다. 의대 진학은 비싼 취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판단력과 책임 문제를 배제한 과장 섞인 발언이지만, 지금 우리가 매달려 있는 '적정 의사 수' 논쟁이 어쩌면 시대착오적이지 않을까 되돌아보게 만든다. 의료인력 수급이 과연 과거의 연장선에서 단순 계산이 가능한 문제인지, 아니 애초에 그렇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오류는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판독, 진단 보조, 원격의료, 자동화된 기록시스템 등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가 이미 의료 현장의 생산성을 바꾸고 있는데, 추계위는 AI에 의한 의사 생산성 향상을 겨우 6%로 예측했으니 기술 발전 속도와 해외 사례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더욱이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 등 현 정부의 추진과제를 감안할 때 지금의 의대 증원 논의는 훨씬 더 난도가 높아졌다. 이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의료인력 양성·배치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의 접근은 여전히 '몇 명을 더 뽑을 것인가'라는 가장 쉬운 해법에 매달리고 있다.
2027학년도 의대 정원 결정은 입시 문제를 넘어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의료의 방향과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중대 사안이다. 인구 감소 속에서 비가역적인 의사인력 증원은 미래 세대에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24·25학번 '더블링'에서 확인됐듯 교육 인프라 확충 없이 정원부터 늘리면 교육의 질 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조차 없는 상황에서 '필요하니 늘린다'는 식의 논리는 무책임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의사의 총량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의료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