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칼럼]'혼돈 속 안정' 모순의 세계질서…올해는 어떨까

위기 속 낙관·정상성 유지한 세계
구획화는 정신 결함 아닌 생존기술
AI 향한 분열된 인식 시험대에

필자는 인류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 '구획화(compartmentalism)'라는 개념을 원시사회의 특징으로 배웠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는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면서도 심리적 긴장이나 인지적 불편을 느끼지 않고, 모순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조차 않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부유한 서구 사회의 잘 교육받은 합리주의자들인 우리는 이런 분열적 비일관성과는 무관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는 상상력의 결핍이나 대중의 피상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인식표를 미군 관광객에게 웃으며 파는 하노이의 노점상을 떠올려보면 된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는 잔혹한 마피아 두목, 세상이 7일 만에 창조됐다고 믿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 같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누구나 구획화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많은 위기와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낙관적이고 명랑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또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고학력 정책 결정자들이 지속 불가능하며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을까 싶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자난 가네시는 구획화라는 개념을 환기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 생애를 통틀어 가장 암울한 세계 속에서도 정상성이 지속되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구획화는 정신적 취약함의 징후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이 잘못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서 필요한 하나의 생존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는 위선, 분열적 사고나 부정, 혹은 현실 도피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전례 없는 규모의 구획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BBC방송의 베테랑 기자 존 심슨은 "나는 40번의 전쟁을 취재했지만 2025년 같은 해는 처음이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문제의식을 포착했다. 그는 이어 "유럽인의 관점에서 전망은 이보다 더 암울할 수 없다"고 썼다.

가네시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할 전쟁 위협이 "절대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방비는 급격히 늘어왔고, 우크라이나 재건에 드는 비용은 막대할 전망이다. 우익 정치 세력도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를 포함한 핵심 산업까지 중국으로부터의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유럽의 연말 소매 소비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11월1일부터 12월24일까지 자동차를 제외한 지출은 전년 동기간과 비교해 3.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네시는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문제를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시켰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함이라기보다 심적 평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생존기술인 셈이다.

구획화는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한 지점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한 세간의 태도에서도 관찰된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시급하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과학적으로 분명하다. 우리는 빠르게 진행되는 기상이변에 수반되는 위협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차량을 운전하고, 이를 금지하는 시점을 늦춰 달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환경에 지속 불가능한 부담을 주는 식품을 소비하고, 지구 최대 청정 지역까지 오염시킬 정도로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폐기한다.

구획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석유 산업계를 향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고,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을 장려하며, 해상 풍력발전을 금지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침묵할 때 작동한다. 그는 환경 위기가 중국의 날조라고 정말로 믿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그는 분명 심각한 구획화에 빠져 있거나 극도로 냉소적인 정치인이거나, 혹은 그 둘 다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다자 협력의 포기 또한 구획화를 활용한 냉소적 접근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책이 야기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세계 교역은 증가했다.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와 달리 이는 오히려 확대됐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의도는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이는 중국의 수출을 다른 시장으로 돌려보낸 것에 불과했다. 연말 중국 수출은 최초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 분명함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높은 관세와 수출 경쟁력 강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정책 불확실성으로 고충을 겪는 미국 기업들, 위축된 소매 소비, 고용 불확실성에도 미국 증시는 인공지능(AI)과 '매그니피센트7'에 대한 낙관론에 힘입어 거품 국면으로 치솟았다. 투자자들은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시장은 1929년 대공황 직전에 비견될 정도로 취약해졌다. 매그니피센트7은 나스닥 전체 시가총액의 약 40%, MSCI 세계지수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 모델이 사실상 '매도' 신호를 보내고 있고, 정부 부채는 수십 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으며, 불평등은 기록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분열적인 낙관론은 여전히 지배적인 것처럼 보인다. 미래를 두려워할 이유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토록 순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AI를 향한 이중적 인식에 있다. 많은 이들은 AI가 경제를 기적처럼 변화시킬 것이라 믿지만, 반대로 다른 이들은 그것이 대규모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 우려한다. AI가 발전한 미래에 막대한 베팅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은 AI가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경계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분열된 인식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결국 구획화뿐이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밀려드는 악재들을 선택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런 모순이 폭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2026년은 흥미로운 해일 것이다.

데이비드 도드웰 스트래티직 액세스 최고경영자(CEO)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2025 was the year of denial. What now?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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