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9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상점에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팔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긴 크리스마스 축제를 벌이는 필리핀. 필리핀은 세계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가장 오래 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9월부터 1월 초까지 이어지는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해외 노동자들의 서로 다른 귀국시기를 고려해 만들어진 특별한 배려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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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에 따르면 필리핀은 세계에서 가장 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갖고 있다.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9월1일부터 시작돼 1월 첫째주까지 4개월간 이어진다. 주요 도심지 곳곳에서 9월 초부터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조명장식을 판매한다. 가장 빨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9월부터 찾아온다.
필리핀 내에서는 이렇게 긴 크리스마스 축제기간을 '버먼스(Ber Month)'라고 부른다. 9월(September), 10월(October), 11월(November), 12월(December) 4개 달은 모두 끝에 'ber'가 붙기 때문에 버먼스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 기간 일부 필리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주고받는다고 한다.
12월이 시작되면 크리스마스 선물 소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24일에 연말 보너스가 나오기 때문에 이를 전후해 선물을 많이 산다. 필리핀 내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연말 성과급과 별개로 각 노동자들이 그해 평균적으로 받던 월급 액수만큼 보너스를 지급하는데 이는 '13월의 월급(13th Month Pay)'이라 불린다. 이 보너스는 각 기업이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필리핀 노동법으로 정해져있다.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모습. 필리핀 관광청
필리핀에서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길게 기념하는 이유는 연말연시를 맞아 고향을 찾는 해외노동자들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CNN은 "해외에 나가있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귀국 시기를 모두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기 힘들다"며 "9월 하순부터 각자 휴가기간 필리핀에 돌아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아예 크리스마스 기간을 늘린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필리핀 노동자의 10% 이상이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전체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9%에 달한다.
필리핀 정부에서도 연말연시 해외 노동자들의 귀국을 장려하기 위해 '발릭바얀(balikbayan)'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73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해외에 사는 필리핀인은 물론 그 배우자, 가족까지 1년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이와함께 해외에서 돌아오는 필리핀인 귀성객들은 '발릭바얀 박스'라고 불리는 정부 지정 상자에 물건을 넣어서 관세 면제 혜택을 받고 필리핀으로 옮길 수 있다.
다만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는 귀성객들로 공항이 많이 붐비고 상점들도 거의 다 문을 닫기 때문에 이 시기 외국인들의 필리핀 관광은 어렵다고 한다. 필리핀 관광청 집계에서 12월15일 이후 연말연시 필리핀 주요 공항에 매년 450만명 정도의 귀성객이 몰린다. 관공서나 회사, 상점들도 보통 12월15일부터 1월 첫째주 일요일까지 휴가, 단축근무를 적용해 대부분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