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기흥, 오후엔 화성…이재용 회장, 반도체 '투자·혁신' 주문

이재용 회장, 기흥·화성 사업장 방문
HBM4 공급 청신호, 임직원 격려
반도체 AI 산업 재편 속 '리더십' 강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국내 반도체 핵심 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하며 기술 경쟁력 회복을 강조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메모리를 넘어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까지 전반적으로 투자와 혁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 회장은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인 'NRD-K'를 찾아 R&D 시설 현황을 점검했다.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구축한 최첨단 복합 연구단지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등 전 사업 영역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거점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주요 제품과 기술 개발 현황을 두루 살폈다. 이어 오후에는 화성캠퍼스를 방문해 디지털 트윈, 로봇 등 제조 자동화 시스템 구축 상황과 AI 기술 활용 현황을 점검했다.

이날 현장에서 이 회장은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과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주요 경영진을 만나 반도체 사업 트렌드와 미래 전략을 논의했다.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D1c·V10 등 최첨단 반도체 제품 사업화에 기여한 직원들과 만나 의견을 경청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

이 회장이 올해 6월 인천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캠퍼스에 이어 반도체 사업장을 선택한 건 하반기에 들어 크게 실적이 개선된 반도체 사업장 임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4조원을 넘어서며 호실적을 낸 바 있다.

반도체 역시 올해 3분기부터 삼성전자는 HBM 출하량을 확대하며 사업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범용 D램 가격이 상승하며 높은 영업이익을 올렸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영업이익이 하반기 23조원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또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 측으로부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는 등 내년 엔비디아에 HBM4 공급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이날 현장에서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번 방문은 단순한 현장 격려를 넘어 삼성 반도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내부에 공유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범용 메모리와 레거시 공정의 수익성이 약화되면서 HBM과 첨단 미세공정 등 인공지능 필수 영역으로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HBM4 평가의 배경으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함께 주목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 메모리 단품 성능뿐 아니라 로직 반도체 공정과의 정합성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HBM4는 로직 공정과 메모리 공정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내부 협업 구조를 통해 전력 효율과 신호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 단계부터 파운드리 공정 조건을 반영해 메모리 인터페이스와 패키징 구조를 함께 조정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보유한 수직계열화 구조를 바탕으로 공정 변경과 기술 보완을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이는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등 설계부터 공정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챙기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삼성전자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해 파운드리나 시스템반도체 사업 분사 가능성을 묻는 외신 질의에 대해 "사업을 키우려는 열망이 크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적자가 이어졌던 파운드리 사업 역시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맞물려 고부가 제품 수요가 확대되며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BM4 경쟁력 회복에는 4나노 공정 기반 베이스 다이 기술(파운드리)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파운드리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며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만큼,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전반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HBM을 기점으로 AI 메모리 분야에서 다시 한번 확실한 기술 리더십을 가져가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며 "HBM4 이후 세대와 CXL 등 AI 반도체용 메모리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의 수율 개선, AI 팩토리를 통한 제조 자동화와 생산성 제고까지 전반적인 시스템 역량 강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IT부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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