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스며든 'K맵부심'…에드워드 리 '홍고추 위스키', 글로벌 공략

기원, 에드워드 리와 협업
세계 최초 홍고추 캐스크 공개
한국 식재료 캐스크 공정에 적용 첫 싱글몰트
K위스키, 실험 넘어 정체성 구축 국면 진입

국내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원(Ki One)'이 세계적인 셰프이자 위스키 저술가 에드워드 리(Edward Lee)를 브랜드 앰버서더로 선정하고, 세계 최초로 '홍고추 캐스크(Red Pepper Cask)' 위스키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로 한국인이 선호하는 매운맛을 주류에 접목하는 이색적인 시도로 이는 우리 위스키가 '존재 증명'의 단계를 넘어 '정체성 구축'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기원은 16일 서울 라이즈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정판 협업 제품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Ki One Red Pepper Cask)'를 공식적으로 출시했다. 이번 제품은 국내산 홍고추로 시즈닝한 오크통에 위스키 원액을 다시 숙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도된 적 없는 공법이다. 이번 협업은 한국 식재료를 위스키의 정통 문법인 '캐스크' 공정에 올려 한국적 풍미를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왼쪽부터)앤드류 샌드 기원 마스터 블렌더, 에드워드 리 셰프, 도정한 기원 대표가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Ki One Red Pepper Cask)' 출시 기념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원 제공

'매운 위스키'가 아니다…캐스크로 설계한 한국적 잔향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의 차별점은 고추의 사용 방식에 있다. 홍고추를 직접 위스키에 우려내는 인퓨징 방식이 아니라 국내산 홍고추와 뜨거운 물로 오크통을 먼저 시즈닝한 뒤 고추와 물을 제거하고 원액을 다시 숙성했다. 즉, 풍미를 술이 아닌 통에 남기는 방식이다.

도정한 기원 위스키 대표는 "고추 맛이 튀는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캐스크를 통해 한국적인 잔향을 설계하고 싶었다"며 "매운맛이 아니라 균형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레드 페퍼 캐스크는 과실과 바닐라, 몰트의 단맛이 먼저 올라온 뒤, 끝에 은은한 매콤함이 남는 구조를 지녔다. 에드워드 리 셰프 역시 "이 위스키의 주인공은 고추가 아니라 밸런스"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위스키로 남아 있으면서, 마지막에 한국적인 킥이 등장한다"고 평가했다.

기원이 에드워드 리를 앰버서더로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이자 '버번 랜드(Bourbon Land)'의 저자로, 음식과 위스키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드문 인물이다. 도 대표는 "에드워드 리는 요리로 경계를 허물고, 글로 술을 탐구해온 인물"이라며 "한국 위스키의 서사를 해외에서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선정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Ki One Red Pepper Cask)'. 기원 제공

이번 협업은 제품 공동 개발이라기보다는 한국 싱글몰트가 해외 시장에서 어떻게 이해돼야 하는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가깝다. 실제로 기원은 레드 페퍼 캐스크의 주요 타깃 시장으로 한국 외에 미국을 지목하고, 한정 물량 일부를 미국에 배정했다.

레드 페퍼 캐스크는 약 1500병 한정으로 생산된다. 주목할 점은 알코올 도수 57.5도(%)의 캐스크 스트랭스(Cask Strength·희석하지 않은 원액) 제품으로 출시됐다는 점이다. 40도 수준으로 희석하면 출고하는 제품 수를 늘릴 수 있지만 기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 대표는 "세일즈 관점에서는 희석이 유리하지만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으면 이 위스키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장인정신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만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는 단기 완판보다 국제 심사와 애호가 시장에서 '기원은 어떤 브랜드인가'를 고정시키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위스키를 음식으로 확장"…K푸드와 함께 가는 K위스키

에드워드 리 셰프가 '기원 레드 페퍼 캐스크(Ki One Red Pepper Cask)' 출시 기념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원 제공

이날 행사에서 에드워드 리는 레드 페퍼 캐스크를 활용한 칵테일과 함께 김치 소스를 활용한 떡볶이와 프라이드치킨 페어링을 선보였다. 그는 "매운 음식은 위스키를 압도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매운 위스키와 매운 음식이 만나면 오히려 균형이 맞는다"며 "이 위스키는 미국에서도 한국 음식과 함께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위스키를 '단독 시음용 고도주'가 아니라 페어링 가능한 미식의 일부로 재포지셔닝하려는 시도다. 또 K푸드의 글로벌 확산 흐름 위에서 K위스키를 설명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기원과 에드워드 리의 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양측은 내년 최소 1~2개 이상의 추가 협업을 예고했다. 관건은 '무엇을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적 재료와 기후, 미각을 캐스크라는 구조 안에서 어떻게 반복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다. 이 실험이 축적될수록 '기원 스타일'은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레드 페퍼 캐스크는 한국 위스키가 처음으로 한국적 재료를 정통 위스키 공정에 올려, 글로벌 언어로 번역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해외에서 말이 통하는 스토리텔러를 통해 확장 전략을 설계했다는 점에서도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x셰프 에드워드 리 에디션은 편의점 GS25의 주류 스마트오더 시스템 '와인25플러스'에서 선착순으로 주문한 뒤 가까운 GS25 매장 또는 GS더프레시 매장을 통해 수령할 수 있다. 가격은 1병(700㎖ 기준) 19만8000원이다. 내년 1월에는 GS25 오프라인 매장에도 출시될 예정이다.

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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