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레이더나 센서에 잡히지 않도록 전자기파를 제어하는 '은폐 기술'이 유연하게 늘어나는 소재 형태로 구현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변형과 움직임이 잦은 환경에서도 전자기파를 흡수·조절할 수 있는 신축성 전자기파 은폐 기술의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KAIST는 김형수 기계공학과 교수와 박상후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액체금속 복합 잉크(LMCP·Liquid Metal Composite Ink)'를 기반으로 전자기파를 흡수·조절·차폐할 수 있는 차세대 신축성 메타물질 기술을 구현했다고 16일 밝혔다. 전자기파 은폐 기술은 물체가 있어도 레이더나 각종 센서에는 잘 감지되지 않도록 전자기파의 반사와 흡수를 제어하는 기술을 말한다.
연구 결과가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국제 학술지 '스몰(Small)' 2025년 10월호의 표지. KAIST 제공
전자기파 은폐 기술을 구현하려면 물체 표면에서 전파의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금속 소재는 단단하고 잘 늘어나지 않아, 형태 변화가 잦은 웨어러블 기기나 로봇, 유연 구조물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액체금속 복합 잉크는 원래 길이의 최대 12배(1200%)까지 늘려도 전기 전도성이 유지되며, 공기 중에 장기간 노출돼도 산화나 성능 저하가 거의 없는 높은 안정성을 보였다. 고무처럼 유연하면서도 금속의 전기적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특성은 잉크가 마르는 과정에서 내부의 액체금속 입자들이 서로 연결돼 그물망 형태의 금속 네트워크 구조를 자발적으로 형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메타물질로 설계해, 반복적인 미세 패턴을 통해 전자기파가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제어했다.
연구진 사진. 윗줄 왼쪽부터 이현승 박사과정, 최원호 교수, 아래쪽 왼쪽부터 김형수 교수, 박상후 교수, (상단) 1저자 편정수 박사. KAIST 제공
연구팀은 이 잉크를 활용해 늘어나는 정도에 따라 전자기파 흡수 특성이 달라지는 '신축성 메타물질 흡수체'를 세계 최초로 제작했다. 잉크로 패턴을 인쇄한 뒤 고무줄처럼 늘리면, 흡수되는 전파의 주파수 대역이 달라지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레이더나 통신 신호로부터 물체를 보다 효과적으로 감지되지 않게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고온 공정이나 레이저 가공 없이 프린팅이나 도포 후 건조만으로 제작할 수 있어, 공정 단순성과 확장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크다.
이번 기술은 신축성, 전도성, 장기 안정성, 공정 용이성, 전자기파 제어 기능을 동시에 만족하는 차세대 전자소재 원천기술로 평가된다. 로봇의 인공 피부, 몸에 밀착되는 웨어러블 기기, 국방 분야의 레이더 회피 기술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이 제시된다.
김형수 교수는 "복잡한 장비 없이 프린팅 공정만으로 전자기파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성과"라며 "로봇과 웨어러블 기기, 국방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스몰(Small)' 2025년 10월호에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논문 제목은 "프린팅이 가능하고 내구성과 초신축성을 갖춘 전자소자를 위한 다기능 액체금속 복합 잉크(Versatile Liquid Metal Composite Inks for Printable, Durable, and Ultra-Stretchable Electronics)"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 중견연구와 KAIST UP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