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스 핀란드다' 정치인들 눈찢기 인증…'인종차별 아니라고?' 뭇매

일부 정치인, 논란 제스처 따라 하며 옹호
미인대회 우승자 퇴출 놓고 정치권 설왕설래

핀란드에서 미인대회 우승자가 인종차별 논란으로 왕관을 박탈당한 데 대한 항의로, 핀란드 연립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단체로 이른바 '눈 찢기' 제스처를 하며 퇴출당한 우승자를 옹호하고 나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미스 핀란드 2025 우승자였던 사라 자프체다. 자프체가 지난해 11월 동아시아인을 연상시키는 '눈 찢기' 제스처를 취한 사진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사진에는 "중국인과 밥 먹는 중"이라는 문구가 함께 담겨 있었는데, 이 제스처는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스 핀란드가 인종차별로 자격을 박탈당하자 여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단체로 ‘눈 찢기’ 사진을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핀란드 국회의원 유호 에롤라(Juho Eerola), 카이사 가레데브(Kaisa Garedew), 세바스티안 튕퀴넨. SNS 갈무리

논란이 확산하자 미스 핀란드 조직위원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이달 11일 자프체의 우승 타이틀을 박탈했다. 조직위는 "미스 핀란드는 국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며 "인종차별은 어떤 형태로든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자프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특히 아시아 커뮤니티에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으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핀란드 정치권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발이 이어졌다. 강경 우파 성향의 핀인당(Finns Party) 소속 의원들이 자프체를 옹호하며 문제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 한 사진과 영상을 잇달아 SNS에 게시한 것이다.

유호 에롤라 핀인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소개 사진을 눈을 찢은 모습으로 바꾸고 "나는 사라다"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인대회 조직의 과잉 대응을 비판하고 자프체를 지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며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조롱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논란이 커지자 "불쾌함을 느낀 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핀인당 소속 카이사 가레듀 의원과 유럽의회 의원 세바스티안 틴퀴넨 역시 같은 제스처를 취한 사진과 영상을 게시했다. 다만 틴퀴넨은 "고정관념을 활용한 유머일 뿐 인종차별은 아니다"라며 "모든 불쾌한 표현이 곧바로 인종차별로 규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눈 찢기' 옹호 두고 연정 내 갈등 조짐

이 같은 행동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강한 비판을 불러왔다. 안데르스 아들러크로이츠 교육부 장관은 "무책임하고 유치하며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누가 봐도 타인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도우파 국민연합당(NCP)의 피아 카우마 의원도 "이러한 제스처가 방치될 경우 인종차별이 일상화될 수 있다"며 조기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야권의 반발도 거셌다. 녹색당 소속 파티마 디아라 의원은 "핀인당이 무엇이 인종차별인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약속한 '무관용 원칙'은 어디에 있느냐"고 총리에게 공개 질의했다. 좌파 연합의 민야 코스켈라 대표 역시 "문화 논쟁으로 경제·복지 문제에서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눈 찢기' 제처로 인해 미인대회 우승자 자격을 박탈당한 사라 자프체. SNS·AP 연합뉴스

그럼에도 핀인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을 감쌌다. 야니 매켈라 핀인당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의 행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미스 핀란드 타이틀 박탈은 사회적 불의이며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핀인당 대표이자 재무장관인 리카 푸라 역시 "많은 핀란드인들이 자프체에게 공감하고 있다"며 "과도한 마녀사냥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다만, 핀란드 정부는 이번 사안을 연정 내 협의 절차에 따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과거 핀인당 의원들의 인종차별 발언 논란 이후 도입된 '제재 메커니즘'이 이번 사안에서도 실질적으로 작동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슈&트렌드팀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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