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농업 바꾼 FTA]④

FTA 보완대책 성과
한라산바이오, 70억원 투입해 시설 구축
악취 없이 자원화전력 생산까지
'축산환경 모델'로 자리잡아

11일 찾은 한라산바이오의 사옥 전경. 가축분뇨를 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는 자원화 시설로, 제주 지역 축산 환경 개선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강나훔 기자

정부가 추진해 온 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 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부담에서 자원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완전히 자리잡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정부 지원으로 구축된 제주 대표 자원화 시설

한라산바이오가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기까지는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이 시설은 2012년 가축분뇨 공동자원화시설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뒤 국비와 지방비 42억원, 자부담 28억원이 투입된 총 70억원 규모로 구축됐다. 2013년 착공해 2015년 6월 준공됐으며, 완공 이후 제주 양돈 산업의 분뇨 처리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FTA 체결로 농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국내보완대책의 취지에 따라 마련된 사업으로, 정부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4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축산환경 개선과 관련 기반 확충을 지속해 왔다.

제주가 특히 분뇨 처리 인프라에 민감한 지역이라는 점도 이 시설의 의미를 더한다. 산지 지형이 많고 지하수 의존도가 높은 제주에서 분뇨가 적정하게 관리되지 못하면 하천과 용천수 오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지역사회는 분뇨 처리시설의 기술 수준과 안정적 운영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한라산바이오는 이러한 요구에 맞춘 설비와 공정 체계를 통해 지역 환경 기준을 안정적으로 충족하며 운영돼 왔다. 송명화 한라산바이오 대표는 "제주는 환경규제가 강한 만큼 기술적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며 "시설 안정성은 지역까지 포함한 전체 축산업의 기반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의 바이오가스 발전 설비. 혐기성 발효로 만들어진 가스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로, 하루 최대 2000㎾ 규모의 전기를 만들어낸다. 사진=강나훔 기자

혐기성 소화조 기반의 친환경 공정…전력 생산까지

시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혐기성 소화조다. 분뇨는 밀폐된 구조에서 약 40도의 온도로 발효되는데, 이 과정에서 악취 성분이 분리되고 바이오가스가 생성된다. 한라산바이오는 이 가스를 전력으로 변환해 판매한다. 과거 음식물 탈리액을 함께 활용하던 시기에는 하루 1만~1만2000㎾까지 생산해 500가구가 공급받을 수 있는 규모의 전력을 만들어냈고, 현재도 하루 약 2000㎾를 생산하며 재생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송 대표는 "전력 생산량은 원료 구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축분뇨만으로도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며 "제주 축산업의 환경 부담을 줄이면서 에너지 전환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효 후 남는 액체는 두 차례 세라믹 필터를 통해 정제된다. 이 정제 액비는 제주 중산간 목초지와 일부 과수원에 공급되며,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화학비료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농가의 비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상당하다. 액비는 특히 초지에서 활용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과수·밭작물 등으로도 적용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농업기술기관과의 연계가 확대되면 작물 특성에 맞는 활용 모델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송 대표는 "정제 액비는 품질과 안전성을 갖추고 있어 더 다양한 작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농가의 선택 폭이 점점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설을 둘러보면 악취가 거의 감지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일반적인 분뇨 처리시설의 경우 공기를 주입해 발효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냄새가 퍼지는 일이 많지만, 한라산바이오는 발효 과정 대부분이 밀폐된 혐기성 소화조에서 이뤄져 외부 유출이 거의 없다. 실제 현장에서도 악취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주민 민원도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도는 분뇨 처리시설에 대한 환경 규제가 전국에서 가장 강한 편인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며 지역 사회의 신뢰를 확보한 사례로 평가된다.

가축분뇨를 고순도 액비로 정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여과 설비. 사진=강나훔 기자

원료 다변화가 향후 과제…순환경제 전환 핵심 인프라로

한라산바이오의 운영은 상근 직원 8명이 맡고 있다. 24시간 가동되는 설비 특성상 전문 인력이 공정별로 역할을 나눠 운영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발효 공정 관리, 가스 회수, 정제 설비 점검, 환경 기준 준수 등 다각적인 업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만큼 숙련된 운영 인력의 역할이 크다. 직원들도 "시설 안정 운영이 곧 제주 축산업의 안정성과 연결된다"며 사명감을 나타냈다.

한라산바이오는 액비 공급량 증가와 공정 효율화로 매출이 8.7% 증가하는 성과도 거뒀다. 액비는 무료 공급 구조이지만 전력 판매와 처리 효율 향상 등 운영 전반의 개선이 매출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송 대표는 "지원사업으로 구축된 기반 덕분에 지금까지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다"며 "재생에너지 생산과 환경 개선을 동시에 이루는 구조가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도 있다. 가축분뇨만으로는 바이오가스 생산량 확대에 한계가 있어 음식물류 폐기물 등 다양한 유기성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경우 생산량을 늘릴 여지가 있다. 최근에는 유기성 폐기물 자원화가 탄소 감축과 순환경제 확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민간 자원화시설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송 대표는 "기술 개선을 지속하고 있으며 제도 보완이 이뤄지면 제주 바이오가스 산업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며 "지역 전체의 자원 순환 구조가 고도화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라산바이오 사례는 FTA 국내보완대책이 단순한 보조금 지원을 넘어 농축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분뇨가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서 제주 축산업의 기반은 한층 안정됐다. 송 대표는 "분뇨가 지역 사회에 부담을 주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자원화 시설이 제주 축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제작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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