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韓 반도체 수출 증가율 1위…'제2의 후공정 클러스터' 부상

말레이시아, 전세계 후공정 13%
올해 韓 반도체 수출 증가율 99%
미국 中 제재 회피로 공급망 이동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가 강화된 뒤 한국 반도체 수출 흐름이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뚜렷하게 이동하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가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율 1위 국가로 떠오르며 후공정 중심의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부상했다. 반면 그동안 후공정을 맡았던 홍콩으로의 수출은 14% 이상 감소했다. 인공지능 수요 확대로 아세안 지역의 파운드리 투자와 첨단 패키징 도입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가속되는 상황이다.

8일 한국무역협회의 '2025년 수출입 평가 및 2026년 전망'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말레이시아로, 전년 동기 대비 9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대만(81.1%) ▲베트남(35.1%) ▲싱가포르(28.2%) 순으로 아시아 주요국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한국의 대(對)말레이시아 반도체 수출량은 최근 급격한 증가 추세다. 2023년 1.7%, 2024년 22.1%에서 올 들어 99.3%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인 셈이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반도체 수출 5위 국가다. 전 세계 조립·테스트·패키징(ATP) 등 후공정의 13%가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후공정은 웨이퍼 형태의 칩을 포장·연결·검증해 완제품 형태로 만드는 마지막 공정이며 말레이시아에서는 조립·테스트·패키징과 제품 위탁생산(EMS) 위주의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페낭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형성돼 활발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해 5월 발표한 '반도체 국가전략'을 토대로 약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은 한국, 대만 등 아시아 반도체 산업 주요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해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반도체 후공정 생산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의 첨단 패키징 시장이 성장하면서 아세안 반도체 산업의 부가가치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허슬비 무협 동향분석실 연구원은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반도체 수출 순위가 높은 국가로, 패키징 공정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며 "현지서 투자를 계속 늘리려는 반도체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꽤 많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에서 이뤄지던 후공정(패키징·테스트) 공정이 일부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대중 제재를 회피할 목적으로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크론, 인피니언,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아세안 투자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인텔은 페낭 지역에 미국 외 최초 3D 패키징 공장을 설립할 예정으로 기존 70억달러에 이어, 최근 약 2억8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개발 붐으로 메모리 수요가 폭발한 점도 말레이시아향(向) 수출 증가율을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허 연구원은 "말레이시아에서 패키징하는 반도체들은 고급 기술보다는 범용 위주 기술에 가깝다"면서도 "최근 워낙 AI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고성능 반도체로만 커버가 안 돼서 범용 반도체 쪽에서도 패키징 수요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가 계속될 경우 국내 기업 역시 말레이시아와 같은 제3국으로의 공급망 분산을 추진할 가능성도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충남 천안에 패키징 공장과 중국 쑤저우에 테스트·패키징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천, 청주에 후공정 시설을 운영 중이며 중국 충칭, 우시 두 곳에도 패키징 공장이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에도 5조원 이상을 투자해 AI 메모리용 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 중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삼성·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이 그동안 중국에서 많은 패키징을 진행해 왔다"며 "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로 특정 제품의 경우 중국에서 패키징을 진행하면 제재 대상이 되니 다른 국가로 생산을 돌리려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D램 17㎚ 이하, 낸드 200단 이상과 같이 규제 대상이 되는 제품은 중국에서 패키징할 수 없어, 말레이시아로 물량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미국 제재가 이어지고 메모리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패키징 물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IT부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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