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발량이]올림픽·월드컵 중계권 확보 경쟁, 방치할 일인가

한국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은 박창선이다. 그는 1986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역사적인 첫 득점을 기록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새벽 3시에 일어나 TV로 지켜봤던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이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TV 앞을 지켰다.

그러던 중 언젠가 대표팀 경기를 볼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중계가 예정된 채널이 IPTV 기본 상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해당 채널은 월 이용료가 더 비싼 프리미엄 상품이었다.

월 TV 수신료 2500원으로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이 지상파 방송을 보던 시절에는 아무 제약 없이 대표팀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매달 1만~2만원대의 유료 방송을 이용하는 시대에 오히려 경기를 보지 못하게 된 상황은 시청자 입장에서 참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리스 여배우 메리 미나가 지난 4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사용될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EPA연합뉴스]

채널이 많이 늘어난 유선방송 시대에 접어들면서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한 채널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급기야 채널 간 갈등으로 애꿎은 시청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년 2월6일 개막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도 그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계권을 확보한 JTBC와 중계권 재판매를 원하는 지상파 3사 간 협상이 아직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경기 때 개최국 조직위원회를 통해 미디어 취재진의 숙소 관리까지 감독한다. 이에 따라 올림픽 개막 대략 1년 전에는 미디어 등록은 물론 취재진의 숙소까지 결정된다. 올림픽 개막이 2개월여 남은 시점임에도 지상파 3사는 아직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번 올림픽에서 지상파 3사의 현장 중계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지상파 3사와 JTBC 간 중계권 협상도 지상파 3사가 올림픽방송서비스(OBS)의 국제신호를 받아 송출하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올림픽 경기 외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대한 생생한 뒷이야기들을 방송에서 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대형 스포츠 경기의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한 채널 간의 경쟁에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 유선방송 시대 채널 간 경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정부 개입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한국 가정의 유선방송 가입률이 95%에 달할 정도로 유선방송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도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활약하는 무대다. 대표 선수들이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만큼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러한 경기들을 제약 없이 시청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장 논리를 지나치게 따질 경우 막대한 국부(國富) 유출을 피하기 어렵다.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은 국내 방송사들이 '공동 협상' 형태로 IOC와 FIFA와 마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중계권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JTBC와 지상파 3사의 갈등 역시 중계권 확보 경쟁 속에서 협상력이 분산되며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적어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는 올림픽과 월드컵만큼은 우리가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화스포츠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