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욕설·모욕 민원은 '무시가 답'…경찰, 하루 20건 즉시 종결

지난해 10월 관련 법령 개정
악성민원 답변 없이 즉시 종결
3회 이상 반복 민원 가장 많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수사관 A씨는 최근 한 민원인이 요청한 제3자의 고소 사건 내용 공개를 거절했다. 그러자 민원인은 "경찰이 일을 그렇게밖에 못 하냐"라는 등 모욕적 발언을 반복하며 항의했다. A씨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해당 민원을 즉시 종결 처리했다. A씨는 "악성 민원 관련 법 개정 이후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줄어 업무 효율성과 만족도가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경찰이 욕설·모욕·업무방해성 민원을 '즉시 종결'한 건수가 많게는 하루 2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관련 법령이 개정돼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답변 없이 종결할 수 있게 된 데 따른 변화다.

25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9월까지 총 1464건의 특이 민원을 즉시 종결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이 584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는 하루 평균 20건에 달한다.

사유별로 보면 3회 이상 반복 제출된 민원이 1115건(76.2%)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 148건(10.1%), 권장 처리시간 초과 128건(8.7%), 모욕 및 성희롱 16건(1.1%) 등의 순이었다. 접수 유형별로는 온라인·문서 민원 971건(66.3%), 전화 민원 304건(20.8%), 방문 민원 189건(12.9%) 등이었다.

지난해 10월29일 개정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민원 내용에 욕설·모욕·협박·성희롱 등이 포함될 경우 담당자가 답변 없이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회 이상 반복 제출된 민원은 내용이 일부 달라지더라도 취지, 목적, 업무방해 의도 등을 고려해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민원 통화 및 면담의 권장 처리시간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한 교통 경찰관은 "단속에 대한 불만으로 반복적으로 똑같은 내용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운전자가 있었는데 이제는 바로 종결할 수 있게 돼 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그만큼 교통안전 관리에 집중할 수 있어 시민 안전으로 이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원 과정에서 폭언·폭행 등 위법 행위가 발생할 경우 기관 명의로 직접 고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고의적 반복 제출을 통한 업무방해성 전자민원에 대해서는 일시적 이용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기관 차원의 고발이나 전자민원 이용 제한 조치를 한 사례는 없다.

일각에서는 즉시 종결 처리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한 항의 표현이 곧바로 특이 민원으로 분류될 경우 민원인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즉시 종결된 경우에도 민원인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이의 제기와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욕설과 인신공격을 수반한 악성 민원은 담당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어 즉시 종결은 경찰관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로 지속적으로 유지·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악성 민원으로 경찰 공무원의 감정노동 부담이 컸던 만큼, 욕설이 확인되면 민원을 받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해져 업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회부 변선진 기자 sj@asiae.co.kr사회부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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