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영화 '좀비딸'에서 정환(조정석)이 좀비가 된 딸을 훈련시키고 있다. NEW
평화로운 어느 오후, 거실 창 밖으로 1층 아주머니가 머리를 쾅쾅 부딪힌다. 울퉁불퉁 솟은 핏줄, 기괴한 표정,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 좀비다. 정환(조정석)과 딸 수아(최유리)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얼어붙는다. 하지만 좀비는 이내 머리로 거실 유리창을 박살 내고 들이닥친다. 부녀는 반려묘 애용(금동)을 데리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다.
재난 문자 알림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집 밖은 이미 좀비들로 들끓고 있다. 정환은 남쪽에 있는 본가로 피난길에 오른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수아는 좀비에게 물리고 만다.
정환은 딸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군인들이 어린 소년과 그의 어머니까지 지체 없이 사살하는 충격적인 광경과 마주한다. 놀란 정환은 딸이 좀비가 된 사실을 숨긴 채 본가로 향한다.
수아의 할머니 밤순(이정은)은 피난 온 아들과 손녀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총보다 무서운 효자손 하나로 정환과 수아, 애용까지 보호한다.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수아를 효자손으로 단번에 제압하고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된다. 수아는 할머니와 손에 쥔 효자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밤순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에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외국 학자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좀비 감염 증세가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환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물지 않는 법,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사회화 훈련에 몰두한다. 치료제가 조만간 개발될 것이라는 보도에 희망을 품는다. 정환의 친구인 동네 약사 동배(윤경호)도 이 사실을 알고 수아의 회복을 돕는다. 밤순과 정환, 동배의 여유 있는 연기 호흡도 인상적이다.
영화 '좀비딸'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고 있다. NEW
'좀비딸'은 2018년 8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일본, 스페인, 북미, 태국 등에서 연재돼 글로벌 누적 조회수 5억회를 기록한 동명 인기 웹툰(작가 이윤창)이 원작이다. 영화 '인질'(2021)을 연출한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 정환 역은 배우 조정석이 맡았다. 실제로도 딸을 둔 아빠인 그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됐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건 내 거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보다 더 잘 맞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딸이 아플 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연기에 몰입했다는 그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딸이 39도까지 열이 올랐던 적이 있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며 "감정신이 많다 보니 연기하면서 과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필감성 감독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좀비가 됐을 때 끝까지 지켜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K팝 음악이 삽입돼 유쾌한 분위기를 더한다. 정환과 수아, 밤순, 애용까지 가족 모두 춤을 좋아하는 설정으로 보아의 '넘버원',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 같은 음악과 안무가 극 중에 등장한다. 감독은 "가족에게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좀비 장르에 가족영화의 따뜻함을 더한 이 작품은 '감염'이라는 위기 속에서 가족이 서로를 어떻게 지키는지를 묻는다. 포기할 수 없는 존재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좀비물과는 결이 다르다. 장르물보다는 유쾌한 가족극에 가깝다. 113분. 12세 이상 관람가. 7월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