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취재본부 심진석기자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가 30여 년간 발간해 잡지 '대동문화'의 그동안 발자취를 설명하고 있다. 심진석 기자
대동문화재단은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유산을 통해 정신적인 풍요와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지난 30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우리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목표로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오며 지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흘러간 세월만큼 대동문화재단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와 만나 지난 시간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대동문화재단이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30년 세월 동안 지역민과 함께 호흡해 온 대동문화재단 어떤 곳인가
▲대동은 우리가 잘 아는 대동여지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대동여지도란 말에는 한반도 즉 우리나라라는 숨은 뜻도 있지만 '함께'란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 전통과 역사 유산을 시민들이 다 함께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동문화재단이란 이름을 짓게 됐다.
이름에 걸맞게 현재는 문화재 돌봄 사업을 비롯해, 문화유산 지킴이 활동, 인문학 강좌 등, 문화와 예술을 총망라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재단의 창립 정신을 계승해 매월 문화유산 답사를 하고 있으며,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유튜브 채널(입문학 수다) 운영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한반도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동문화재단을 만든 계기는
▲누구와 만나서 인연을 맺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나처럼 제대로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오지 않은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부끄럽게도 나는 당시 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을 끈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엔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범부였다.
다만 나는 늘 인덕이 많은, 복 받은 사람이었다. 성장 과정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과 도움이 많았던 덕분으로 오늘이 있는 것이다.
특히나 서양화가이자 민족주의자인 오지호 선생과의 인연은 매우 특별했다. 나는 70년대 중반 광주 호남동성당 별관에 자리한 호남한문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명예 원장이셨던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됐다. 그리고 2년여 동안을 곁에서 모시는 영광을 누렸다.
호남한문학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교부 인가학원으로 당시 지역 명사들의 문화 살롱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선생님을 비롯해 의재 허백련, 근원 구철우, 남용 김용구, 송곡 안규동, 김정용 신부, 김창선 옹 등이 수시로 출입을 했다. 어린 나이에 당대의 문화예술, 지역사회의 거물들을 뵙는 영광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정신적 토양이 됐다.
선생님은 틈만 나면 나에게 '민족을 생각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십 대 후반의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민족이 무엇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후 마주한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큰 전환점이 됐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남도의 봄날은 신군부 군홧발에 짓밟혀 처절하게 찢긴 아픔의 봄이었다. 그때 나는 비극의 현장서 계엄군의 만행을 똑똑히 보았다. 분개한 광주시민들은 너나없이 스스로 금남로에 나와서 계엄군과 맞서 싸웠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금남로에서 함께 싸우던 어린 청년 동지의 처참한 죽음을 본 순간, 내 가슴은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두려움이 분노를 눌렀고, 내 발걸음은 70리 밖 나주 금천의 고향 마을로 도망치게 했다. 두려움과 비겁함 때문에 살아남았던 나는 그날 이후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했다. 80년 이후 살벌한 90년대 초반까지는 '5월 광주'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 하듯 살았다. 이후 용기를 내서 망월동 열사들의 묘역을 찾아 동지들 앞에서 눈물로 다짐했다.
"살아남은 목숨값을 하다가 뒤를 따르겠소이다. 평안히 잠드소서!" 그 이후 15년이 지난 후 오늘날 내 필생의 업이 되어있는 대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선현들이 남긴 유구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살면서 이 땅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오지호 선생님의 가르침과 5월 광주에 대한 채무 의식 같은 것들이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또 90년 초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바로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 답사 신드롬의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오늘날 문화유산 지킴이로 살아가는 도화선이 됐다.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가 재단을 운영하면서 국가 등으로부터 수여받은 표창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심진석 기자
-30년 시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스무살 약관 때부터 한문 강사를 시작한 후 삼십 대 중반 무렵엔 구수한 입담 덕으로 꽤 인기 강사였다. 하루는 후배 제자들과 함께 가사문화권 일대로 현장 답사를 했는데, 이날이 1995년 6월 6일로 답사 전문단체로 성장하는 첫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현장 강사로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을 초빙해 해설을 들었고, 이때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답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기적으로 답사를 실시하면서 역사의 숨결 따라 라는 자료집을 펴냈다. 이것이 오늘날 문화잡지 '대동 문화'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대동문화재단은 우리의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켜가자는 것이 기본 가치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분의 후원으로 재단을 이끌어갔다. 고단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250여명의 회원분이 십시일반 모아주신 기부금을 바탕으로 여러 공익적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관심을 끌어 올리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우리의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잡지를 만들고, 인쇄사업을 하면서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곤 있지만, 활자 산업이 쇠퇴기를 맞이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다.
광주시 등 지자체에서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분의 관심이 절실하다.
-재단을 운영하면서 정말 기억이 남는 상황들도 많을 텐데
▲오늘날 대동문화재단은 호남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지킴이 단체로 많은 분께 인정받고 있다. 30여년간 발간해 온 격월간 '대동 문화'는 우리 문화의 콘텐츠를 담아내는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잡지라는 점에서 나름 긍지도 느끼고 있다. 특히 장인(匠人)에게 수여하는 '대동전통문화대상(2019년 첫 시작)'은 시민 후원의 문화 나눔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일이라 본다.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은 결국 전통의 맥을 지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들 옆에서 조용하지만 귀중한 문화를 수호하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예전에 양동시장에서 수제톱을 만드는 분이 있었는데, 그 세월만 무려 60여년이었다. 어떤 독지가로부터 이분들 추천받아 상을 수여했는데, 그분이 나에게 "저같은 사람에게도 상을 주나요"란 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그분의 두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란 말로 대신했지만, 가슴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로 이러한 분들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지난 30년 세월동안 대동문화재단의 역사가 한눈에 정리된 연혁표. 심진석 기자
-올해 대동문화재단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축하공연 울림을 기획한 것으로 안다
▲민간단체가 30년이란 시간을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더 나아가 새롭게 변화 및 발전시키기 위해 걸어온 세월이기도 하다.
나름 내 모든 것을 바쳤다. 지금은 당시의 나의 가치관, 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울림을 줄 때가 왔다고도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 재단을 지원해 준 지역사회에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었다.
이번 공연 울림은 이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민족적 정서를 품은 울림이란 공연을 통해 문화혁명의 새 이정표 만들었으면 한다.
이날 많은 분이 행사장을 찾아와 가수 소향, 소리꾼 장사익 선생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대동문화재단이 전통문화 지킴이로 한 우물을 파며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지켜가는 것도 또 하나의 전통을 이어가는 길이라고 본다.
나는 내 젊은 시절을 재단과 함께했다. 젊음을 무기 삼아 앞으로만 나아갔던 나도 이젠 늙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후배에게 재단을 물려줄 시기가 왔고, 그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다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대동문화재단을 맡더라도 처음 세웠던 기본 이념은 그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여기에 시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해서 다 함께 사라지고 있는 우리 문화를 지켰으면 한다. K-컬쳐라며 전 세계가 우리 문화에 열광한다. 그러나 전통이 무너지면 현재 문화예술의 깊이는 결국 없어지는 것이다.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전통문화는 담백함으로 함축할 수 있다. 대동문화재단이 나가야 방향도 결국 여기에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