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기자
"한국에서 구글 맵(지도)이 안 된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길을 찾을 수 없군요. 믿을 수 없습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숏폼(짧은 동영상)' 콘텐츠에 등장한 한 미국인 관광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구글 맵으로 목적지까지 경로를 검색했지만 대중교통 노선만 뜰 뿐, 도보나 자동차 경로는 보이지 않았다. 구글 맵은 한국에서 무용지물이고,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이 필수라는 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구글 맵이 우리나라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구글은 "한국에서 5000대 1 고정밀 지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구글은 2007년과 2016년에 고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했지만 정부에 반려당했고, 올해 2월 또다시 신청한 상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구글을 거들고 나섰다. 지난달 31일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이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걸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지도 반출을 압박한 것이다.
국내 테크기업들은 구글이 반출을 요청하는 고정밀 지도를 정부에서 받아 활용한다. 그런데도 구글만 안 된다고 하는 건 속사정이 있다. 구글이 군부대 같은 국가 민감시설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고정밀 지도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가져가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운영 방침상 세계 각국 데이터센터에 데이터를 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정부 요청에 따라 국가 민감시설을 지도에서 가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에도 시설의 좌표를 구글에 넘겨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구글에 이를 허용하면 역차별이라고 펄쩍 뛴다. 구글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그곳에 지도데이터를 보관해 구글 맵을 정상작동하면 되는데 굳이 해외로 가져가겠다는 건 법인세 회피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법인세를 내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티맵 같은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 중 일부는 지도를 포함한 국가 지리정보 개선 작업에 쓰인다. 지난해 네이버는 3902억원, 카카오는 1590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경쟁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구글은 고정밀 지도를 요구하기 전에 조세 역차별이나 안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명확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민감한 사안은 뒷전으로 미룬 채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건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구글이 한국의 데이터센터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저장해 꺼내 쓰고, 구글 맵도 우리나라에서 마음껏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 디지털 지도 시장에도 강력한 경쟁자가 진입해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구글이 진출한 국가 중 구글맵으로 제대로 된 길찾기가 불가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카나리아제도와 한국뿐이다. 이걸 한국 정부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공정한 출발선을 스스로 찾아 서야 할 주체는 오히려 구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