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석유·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국내 관련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별 중장기 전략 구상에 앞서, 정부의 뚜렷한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도입된 미국산 원유는 2151만1755t으로 전체 도입량의 15.7%를 차지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LNG는 563만7579t으로 12.2%를 차지했다.
한국은 트럼프 1기 정부 시절(2017~2021년)에도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조치에 나선 바 있다.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2017년 전체의 1.2%에 불과했으나 2021년 12.1%, 2022년 12.9%, 2023년 13.5%까지 증가해 지난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7년 미국산 LNG는 전체 도입 비중의 5.2%였으나 2021년 18.5%로 급증했고, 이후 주춤하다 지난해 다시 고개를 든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그들(EU)이 빨리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미국의 석유와 가스를 구매하는 것이다. 우리는 관세를 통해 이를 바로잡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석유와 가스를 구매해야 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대부분 미국 연안에서의 석유 및 가스 시추 금지 조치를 철회해 노골적인 미국의 에너지 개발 활성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조치한 신규 LNG 수출 플랜트 승인 동결 조치도 해제했다.
정부는 이런 변화가 수출 등 경제에 미치는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 및 LNG 도입 확대와 관련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기엔 시기상조”라면서도 “현재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방침 논의가 답보 중인 가운데 기업들은 장기 전략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수입국 다변화를 위한 지원책을 언급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이 수익성을 담보하지 않는데도 수입하는 건 주주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게 하려면 다변화 지원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원유나 LNG 도입 여부는 시장 가격에 달린 상황이지 정부가 민간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정부 정책 흐름에 따라 기업이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정책적 요소들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유사들도 미국에서 들어오는 석유, 가스 관련 압박이 있다는 걸 알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 우선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야 방향을 정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