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미국의 장기채 금리가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속도를 완화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재정적자 확대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 같은 금리 상승이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미 재무부와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미국 10년 국채 금리는 23일(현지시간) 뉴욕증시 마감 무렵 4.589%로 전날 같은 시각 대비 6.3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지난 5월29일(4.616%)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9일 이후 상승세다(국채 가격 하락). 내년 Fed의 금리 인하 횟수가 적어지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이후 미국 재정적자가 악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투자자들이 장기채를 앞다퉈 매도한 결과다.
앞서 Fed는 지난 18일 점도표에서 내년 말 기준금리를 지난 9월 전망치(3.4%)보다 0.5%포인트 높은 3.9%로 제시했다. 통상 Fed가 한 차례에 0.25%포인트씩 인하한다고 가정할 때 9월 전망(4차례) 대비 금리 인하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스티펠 니콜라우스 앤드 코의 크리스 아렌스 전략가는 “재정 우려와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에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채 금리는 통화 정책뿐만 아니라 향후 경제 성장 전망에도 영향을 받는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와 2년물 국채 금리 간 격차는 이달 초 거의 ‘0’에 수렴했으나 이날 한때 24bp까지 벌어졌다. 이날 발표된 미국 소비 및 기업 투자와 관련한 경제지표가 모두 시장 예상을 하회한 수치를 기록한 탓이다.
콘퍼런스보드가 공개한 12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04.7로 수정 전월치(112.8) 대비 8.1포인트 급락했다. 12월 기대지수는 전월 대비 12.6포인트 급락한 81.1을 기록하며 ‘침체 기준선’ 80을 겨우 지켰다. 같은 날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 11월 내구재 주문도 전월 대비 1.1% 줄어 월스트리트저널(WSJ) 전문가 집계치(0.3%)에 한참 못 미친 동시에, 지난 6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내구재 주문에는 항공기, 가전제품, 컴퓨터 등 고가 품목이 포함된다.
Fed의 금리 인하 기조에도 트럼프 당선인 정책 등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내년 장기물 금리가 현 수준에서 오를지 내릴지에 대해서는 월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블룸버그가 취합한 12명 전문가의 내년 말 10년물 국채 금리 예상치 평균은 4.25%다. 이는 지금보다 금리가 33.9bp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월가 중 채권에 대해 최대 낙관론을 펼치는 모건스탠리는 경제 성장에 대한 하락 압력으로 Fed가 금리 인하 속도를 다시 높일 것으로 예상하고 내년 말 10년물 금리가 3.5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장기채 금리가 오히려 뛸 것이라고 보는 측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높은 관세 부과 조치, 이민 통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채권 발행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이로 인해 내년 Fed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한 도이체방크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4.65%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심지어 10년물 금리가 내년 5%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보는 분석가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Fed의 금리 인하 기조에 축소하고 있었던 기업 신용 스프레드(기업채와 국채 간 금리 차)는 내년 말까지 확대 추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BMO 측은 현 82bp 수준인 기업 신용 스프레드가 내년 말까지 105bp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내년 초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