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침해'vs'평온할 권리'…15년째 입법공백, 혼돈의 심야 집회[논란의 집시법]

③집시법 10조 손질 두고
여야 대립에 법 개정 무산
술판·노숙 집회 시민 불만 초래
집회 시간, 사회적 협의 모색해야

편집자주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집회로 인한 불편이 행복권 추구라는 또 다른 기본권과 충돌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에도 균열이 생겼다. 허술한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집회도 있다. 아시아경제는 4회에 걸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둘러싼 여러 논쟁과 대안을 진단해본다.

심야시간대(오전 0~6시) 집회·시위 전면 금지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시민사회단체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당정이 시민 평온권 보장을 이유로 심야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야당과 노동계는 개정안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정 이후 심야 집회에 관한 입법 공백이 15년째 지속되면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야 간 대승적 협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개최한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시법 10조 사문화…자정 후 집회는 여지 남겨둬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1일 심야시간대 집회 금지를 골자로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집회·시위 금지 시간을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로 구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집시법 10조는 일몰 이후부터 일출 전까지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에 대해 각각 헌법불합치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집시법 10조는 효력을 잃었다. 이후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15년째 입법 공백 상태다.

앞서 헌재는 2009년 옥외집회 금지 시간대를 '해가 진 뒤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로 규정한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가 진 뒤 모든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4년에는 해가 진 후 같은 날 자정까지 시위를 금지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집회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자정까지는 집회와 시위를 허용하라는 취지였다.

다만 자정 이후 집회와 시위에 관해서는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 우리나라 시위 현황과 국민의 법 감정에 따라 입법을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국회에 공을 넘긴 것이다. 그럼에도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법 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이처럼 심야 집회에 대한 유효한 제재 규정이 없다 보니 경찰은 집시법 내 다른 조항을 사용해 우회 대응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 8조는 집회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위험을 초래할 경우 집회 금지 통고를 내릴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집회가 자정 넘어 주거지 인근에서 열리거나 심각한 교통체증을 유발해 질서를 해칠 경우 집시법 8조 등 다른 조항을 근거로 집회를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노숙 집회 빈축…개정안, 자정 후 집회 금지 방점

이처럼 10년 넘게 지속된 입법 공백으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자 당정은 대대적인 집시법 손질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가 벌인 1박 2일 노숙 집회가 법 개정 추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건설노조 측이 경찰이 금지 통고를 한 오후 5시 이후에도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매트를 깔고 노숙 집회를 이어나가면서 극심한 교통 체증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이 술판을 벌이거나 노상 방뇨하는 모습이 포착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는 집회 소음 관련 민원 80여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5월17일 출근시간대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전날 밤 총파업 결의대회 후 노숙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을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문제가 된 노숙 집회를 금지하는 데 방점을 뒀다. 앞서 헌재가 논의 여지를 남긴 자정 이후 시간대를 집회 금지 시간으로 명시한 것이다. 경찰 역시 지난해 9월 자정 이후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윤재옥 의원실 관계자는 "15년간 심야 집회 규정이 입법 공백 상태에 놓였다는 것은 사실상 국회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맞서 국민의 수면권과 평온할 권리도 함께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의 집시법 개정은 요원한 상태다. 야당과 노동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근거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어서다. 앞서 2009년 헌재 결정 당시 9명 중 5명의 재판관은 헌법이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야당과 노동계는 해당 의견을 근거로 특정 시간대 집회만 허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법원도 경찰의 심야 집회 금지 처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모 시민단체가 심야 노숙 집회 금지 처분을 정지해달라며 서울 종로경찰서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숙 집회가 전면 금지될 경우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본권 침해 소지 고려…전문가 "정책 균형점 찾아야"

전문가는 자정 후 심야 집회 제재를 둘러싼 소모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기존 집시법에 명시된 '일몰부터 일출까지' 시간대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보니 직장인 등 특정 계층의 집회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며 "다만 취지가 변질되면서 노숙 집회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심야 집회 금지 시간 범위를 어떻게 산정할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평온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집회의 자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중탁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합헌으로 인정한 야간 집회는 건전하고 평화로운 집회를 전제로 한다"면서 "자정 이후 이뤄지는 심야 집회에서의 고소음과 무질서까지 집회의 자유 보호 범주에 포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철저하게 타인의 건강권과 평온권,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평화로운 집회를 전제로 심야 집회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권이 상충되는 만큼 대승적 관점에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사회부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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