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거대 야당이 유례없는 칼질에 나섰다. 상임위별로 정부 예산안을 크게 감액했다. 상임위 단위에서 감액한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존중해야 해 전체 예산안 심사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아시아경제가 내년도(2025년 예산안) 예산심사 보고서를 통해 세부 심사 항목을 공개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 8개 상임위원회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2024년 예산안)와 비교해 전례없이 고강도 예산 삭감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상임위원회 심사의 경우 소관 부처의 사정과 의원들의 희망 사업 등을 고려해 증액 심사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왔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현재 국회에는 9개 상임위가 예비심사보고서를 공개했다. 다만 2024년 예비심사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한 정무위원회를 제외한 8개 상임위의 감액 규모는 7998억원에 이른다. 해당 상임위의 올해 예비심사 결과 감액 규모 합계 2527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체회의 의결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기획재정위원회의 경우에도 예산결산소위원회 단계에서 4조8000억원 규모의 예비비가 2조4000억원 삭감되기도 했다. 이를 포함하면 올해 상임위별 예산 삭감 규모는 기록적인 수준이 된다. 통상 상임위 예산 심사는 감액보다 증액이 많아 전체적으로 늘어나서 예결위에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데, 올해는 법사위의 경우 순삭감된 채로 예산안이 심사되기도 했다.
국회 예산은 상임위별로 예비심사를 통해 여야, 관계 부처가 의견을 교환해 사업별로 증액과 감액을 정리해 예결위에 보낸다. 예결위는 이 예산 심사 내용을 토대로 심사에 나서는데, 국회법 84조에 따라 감액된 예산을 다시 늘리려면 해당 상임위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특수활동비 80억원과 특정업무경비 507억원 등을 삭감한 법사위의 경우 예결위 차원에서 타협을 봐 예산안이 다시 일부라도 살아나려면 법사위의 동의가 필요하다. 올해는 소위 단위에서도 여야 간 상임위별 예산심사가 치열했는데, 이는 여야 의원들이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에 야당이 예산안 칼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야당이 이렇게 예산삭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관련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시한에 얽매이지 않고 불필요한 예산은 과감히 감액해 국회의 예산 심사권을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회법상 예결위가 상임위별로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려 해도 소관 상임위가 재의결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면서도 "다만 예산안 본회의 때 예산안 수정안 형태로 처리될 경우에는 상임위 동의 없이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은 예산 심사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여야는 상임위별로 일단 이번 주까지 심사를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재위는 예산심사가 중단된 상황이고, 운영위원회는 대통령실·감사원 등 소관 부처 특활비 예산에 대한 전액 삭감 문제 등을 두고 실랑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