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주기자
오규민기자
미국 고등학교에선 금융교육이 인기다. 10대 시절 일찍이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는 문화가 있는 미국에선 고등학생 때부터 자산관리의 개념과 활용법을 궁금해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동안 주식거래 핀테크(금융+기술) 회사 ‘로빈후드’가 몸집을 불리면서 Z세대(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자)는 주식·펀드 등 투자에도 뛰어들었다.
학생들의 금융교육 수요는 주(州)별 교육과정 변천사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 경제·금융교육 단체인 경제교육협의회(Council for Economic Education·CEE)에 따르면 전체 50개 주 가운데 금융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주는 2020년 6개에 그쳤지만 현재는 총 20개 주에서 금융교육을 요구한다.
미국의 경제·금융교육 전문가인 윌리엄 보스하르트 플로리타애틀랜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8월24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시간적 한계로 경제교육과 금융교육 중 하나만 가르칠 수 있다면 흥미롭고 실용적인 후자를 고를 것”이라면서도 “쏠림현상으로 경제교육에 소원해지는 모습이 우려스럽다. 이상적인 학교라면 경제·금융교육을 반년씩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달라지는 우리나라 경제·금융 교육과정에 조언을 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경제·금융 관련 과목은 ‘경제’ ‘금융과 경제생활’ ‘인간과 경제활동’ 등으로 세분화될 예정이다. 보스하르트 교수는 “경제·금융 수업이 모두 열리는 미국 고등학교는 대부분 금융을 먼저 가르친다”며 “앞서 배운 금융지식을 기반으로 경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하르트 교수는 1995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 경제교육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는 중·고등학교 과목에서의 액티브러닝을 활용한 경제·금융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또한 CEE에서 경제·금융교육 표준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표준 교육과정은 미국의 50개 주가 각각의 교육과정을 결정할 때 일종의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다음은 보스하르트 교수와의 일문일답.
-경제교육과 금융교육의 차이는 무엇인가.
▲금융교육은 한 가정이 어떻게 소득을 얻고 저축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사거나 신용을 활용하고, 투자하고 또 손실에 대비하는지 알아보는 과목이다. 경제교육은 적용 범위가 훨씬 넓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생산자·정부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공부한다.
-경제교육과 금융교육 중 하나만 가르친다면.
▲처음에는 경제교육이 고등학생에게 더 나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 경제교육은 경제·금융 관련 포괄적인 내용을 제공해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실용적이면서 흥미도 줄 수 있는 금융교육이 고등학생에게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 학교에서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금융교육을 추천할 것이다.
또한 미국에선 전체 고등학생의 약 50%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사회로 바로 진출하는 나머지 절반은 고등학교에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들은 대학에서 금융시장에 대해 배우지 않은 채 일자리를 가지고 재무관리를 하는 만큼 고등학교에선 금융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 고등학생은 금융교육에 관심이 많은가.
▲금융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고등학생들은 신용카드나 직불(체크)카드를 사용하거나 로빈후드 등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식을 거래하면서 금융시장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50개 주별 고등학교 교육과정 선정 트렌드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은 주마다 교육과정이 다르고, 졸업을 위한 필수과목도 각 주의 재량에 따라 정해진다. CEE 조사에 따르면 경제교육을 졸업요건으로 지정한 주는 18개뿐이었다. 과거에는 경제교육을 의무로 내건 주가 더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융교육의 인기가 높아지며 현재 총 20개 주에서 금융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요구하고 있다.
-금융교육으로 체험형 학습을 활용하기도 하나.
▲그렇다. 미국 금융사들은 고등학교 수준의 금융교육에 참여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진다. 이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금융 교과목 편성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금융교육과 반대로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에 우려점이 있나.
▲학계에선 이런 추세에 경각심이 크다. 일례로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미국인의 35%는 금리를 인하하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둔화한다고 응답했다.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시민이 경제정책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또 의견을 내려면 우선 시장경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수요와 공급의 기초를 배우면 가격이 왜 변하는지 이해하는 까닭에 더 나은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금융교육에 이목이 쏠릴수록 경제교육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제교육과 금융교육 모두 지원을 받는 편이 좋다고 본다.
-한국에선 2025년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신설된다. 경제교육과 금융교육이 모두 편성된다면 무엇을 먼저 가르치면 좋을까.
▲경제·금융 수업이 모두 열리는 미국 고등학교는 대부분 금융을 먼저 가르친다. 경제·금융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흥미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대체로 금융이지 않나. 금융을 먼저 배운다면 추후 경제교육에 진입할 때 재밌는 금융지식을 기반으로 경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
-미국의 경제교육 및 금융교육 관련해 시사점이 있다면.
▲미국 고등학교에서 경제교육은 필수과목이 아니거나 시험을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표준 교육과정에 경제교육을 포함하더라도 졸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거나 교육을 마무리한 후 평가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 내용이 강조될 수 없다. 이상적인 학교라면 고등학교 수준에서 학생들이 금융교육을 반년, 경제교육을 반년 배워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