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대 과징금·공장 헐값 매각…러시아에 앓는 기업들

대한항공 과징금 1800억 부과
현대차는 공장 14만원에 매각
일부 기업들 지분 압류 당하기도

대한항공이 러시아 당국과 2년간 소송을 진행한 끝에 1800억원대 과징금 폭탄을 부과받은 건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리스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의 피해 사례는 2022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계기로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맞은 과징금 폭탄에 대해 러시아 당국 ‘트집 잡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반응이다. 앞서 대한항공 화물기 KE259편은 2021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던 중 모스크바를 경유했는데, 공항세관의 직인 날인을 받지 않고 이륙해 현지 세관으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러시아 법규에 따라 모든 서류와 데이터를 제출했으며 정상적으로 화물을 통관하고 세관으로부터 전자문서로 사전 승인을 받았다"며 "세관 직인 날인을 모든 절차를 지킨 점을 고려하면 위법 의도가 없었고, 이 부분도 공항 세관 당국에 여러 차례 소명했다"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과징금이 부과된 날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이다. 미국 등의 제재로 자금줄이 막힐 것을 염두하고 해외 기업들을 쥐어 짜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 사이에선 ‘러시아 리스크’가 본격화되는 것으로 본다. 이미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 13년 만인 지난해 말 현지 기업에 1만루블(14만원)에 헐값 매각했다. 러시아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2021년 기준 23만4000대 규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국제사회가 제재에 돌입하자 현지 자동차 부품 수급이 크게 악화되면서 내린 결정이다. 비록 매각 후 2년 내 공장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내걸었지만 이미 적잖은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는 이와 함께 2020년 인수한 제너럴모터스(GM)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도 넘기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는 프랑스 유제품 기업 ‘다논’과 덴마크 맥주 제조사 ‘칼스버그’ 등의 러시아 현지 법인 주식도 압류했다. 지난해 7월 다논 러시아 법인과 칼스버그가 소유한 러시아 맥주제조사 발티카의 지분을 러시아연방 국유재산관리청의 임시 관리 아래 두라는 대통령령이 내려진 것이다. 다논과 칼스버그의 자회사들은 모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현지 사업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그 밖에도 독일과 핀란드의 국영 발전사 지분도 러시아 정부가 임시관리하게 됐다. 러시아에서 아직 철수하지 못한 비우호국가 기업의 러시아 법인들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줄줄이 이어진 것이다.

러시아의 제재를 받은 기업들은 ‘후환’을 두려워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인천~모스크바’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운영했고 여름시즌엔 ‘인천~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에 비행기를 띄웠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와 납부 어려움에 향후 노선 재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의 바이백 조항처럼 추후 사업 여지를 남겨놨지만 막상 그 시기가 왔을 때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추가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 정부 차원의 제재에 우리 기업이 홀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선제적으로 현지 상황을 주시하고 리스크에 대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과징금 부과 최종 패소 건에 대해선 우리 외교부에 별다른 어필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가에 포함돼 있는 만큼 러시아 정부의 조치를 지속적으로 살펴보며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자흐서 기자회견 하는 푸틴<br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월4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 협의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산업IT부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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