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조유진기자
한국이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성공했다. 편입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에 등재된 지 2년 만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벤치마크로 활용하는 WGBI 편입 결정에 따라 내년부터 최대 80조원대 해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금리 안정에 따른 정부·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절감, 안정적 재정운용 확보 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8일(현지시간) '2024년 10월 채권시장 국가분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WGBI에 편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수 반영 시점은 내년 11월부터다. FTSE 러셀은 "한국 정부가 WGBI 편입을 위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제도개선을 시행함으로써 글로벌 투자를 확대, 장려하려는 노력과 함께 글로벌 채권투자자들의 실질적인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FTSE 러셀이 운영하는 인덱스인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즈 글로벌 종합지수, JP모건 신흥국 국채지수와 함께 세계 3대 채권지수로 꼽힌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 국채와 더불어 중국·멕시코·말레이시아 등 신흥국 국채 등 총 25개국 국채가 편입돼 있으며, 추종 자금은 3조달러(약 4035조원)로 추산된다.
FTSE 러셀은 이번 검토 결과 한국의 '시장 접근성' 요건이 레벌1에서 레벨2로 재분류됐다고 설명했다. FTSE 러셀은 통상 매년 3월과 9월 WGBI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데, WGBI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전체 발행 잔액의 액면가 500억달러 이상, S&P 기준 국가 신용등급 A- 이상(무디스 기준 A3 이상), 시장 접근성 레벨 2가 충족돼야 한다.
한국은 국채 발행 규모나 국가 신용등급 등 정량적 요건은 충족됐지만, 2022년 9월에 관찰대상국 지정 이후 앞선 세 차례 도전에선 고배를 마셨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국채 시장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간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해 올해 국채통합계좌 개통,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거래 마감시간 연장 등과 함께 작년 외국인의 국채투자 비과세, 외국인 투자자등록제(IRC) 폐지 등을 시행했다.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이 같은 제도적 정비가 완료되면 WGBI 국채 편입은 시기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9월 WGBI 편입 결정은 시장 예상을 뒤집은 빠른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FTSE 규정에 따르면 시장 접근성 레벨이 상향 조정된 이후 적어도 6개월(at least six month’ notice)이 지나야 WGBI에 편입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이 가장 빠르게 WGBI에 편입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올해 9월 시장 접근성 레벨 2 상향, 내년 3월 편입이었다. 제도적 접근성이 높아지더라도 바뀐 시장 제도에 대해 실제 투자자이 체감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WGBI 편입은 글로벌 운용사들 간의 찬반 회의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데, 회의 결과를 반영하는 시차 등을 고려하면 이번 9월 편입 확정은 고무적"이라며 "그간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과 우리 경제 상황 등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뢰를 보여준 결과"라고 평했다. 정부는 올해 현지 국채 투자기관 대상 라운드테이블을 도쿄·홍콩·런던·싱가포르 등에서 총 9차례 진행하며, 제도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알린 바 있다.
WGBI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 수준으로 추산된다. WGBI 추종 자금이 3조달러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600억~750억달러의 자금 규모다. 이에 따라 내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최소 600억달러(약 80조6400억원)의 패시브 자금이 국채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80조원은 정부의 연간 국고채 순발행 규모와 비슷한 규모다. 정부는 내년에 201조3000억원의 국고채를 발행할 예정이며 이 가운데 83조7000억원이 순발행 규모다.
정부는 대규모 자금 유입으로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 조달비용이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국채의 위상(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한국 국채는 높은 수준의 금리가 형성돼 있었다. 정부 등은 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금리 인하로 연간 최대 1조1000억원의 이자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는 "WGBI 편입으로 금리가 안정됨에 따라 정부?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줄어들게 되고, 외환시장의 유동성도 증가할 것"이라며 "WGBI를 추종하는 안정적인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입되면서, 금리 인하효과가 단기물부터 장기물까지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국채 수요기반이 확충되면서 안정적인 중장기 재정운용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번 결정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우리 경제의 견고한 펀더멘털과 역동성, 그리고 재정건전성을 높이 평가하고, 지난 2년간 추진해온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확신과 신뢰의 결과"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