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석기자
나노계측장비 원자현미경 분야 세계 1위 업체 파크시스템스에는 인사담당자 같은 '곳간지기' 임원이 있다. 조연옥 전무다. 조 전무는 오너가 아닌 구성원이지만 오너처럼 일한다. 유교 경전 주역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구한다)라는 말을 실천한다. 재무 전문가여도 필요하면 복지 제도를 연구하고 반도체 기술을 공부한다. 파크시스템스 본사엔 조 전무 같은 사람이 350명 모여 있다. 여성이 셋 중 하나꼴(113명)이다. 일에는 남녀가 없고 회사에는 구성원이 없다. 모두가 오너다.
왜 이렇게 똘똘 뭉친 걸까. 두 번의 좌절, 12년이 걸린 코스닥 상장 도전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뭉쳤다. 상장 직전 2년간 적자 늪에 빠져 코스닥 상장 조건인 '당기순이익 10억원'은 어림도 없었다. 직원 20%, 부서장 40%, 대표이사 50% 각각 급여를 줄였다. 경영이 정상화되면 보상해준다는 대표의 약속뿐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 오너가 돼서 달려들었다. 2015년 기적적으로 흑자 전환을 한 와중 정부에서 코스닥 예비상장기업 기술평가 문턱을 낮춰줬다. 정부 발표 후 8개월 만에 코스닥에 입성했고 약속대로 직원 급여 감소분을 보상했다. 직원들에게 부여해왔던 스톡옵션도 드디어 빛을 발했다.
조 전무는 회계를 공부한 사람이다. 그런데 회사의 출산축하금, 입학축하금 제도, 선택적복리후생, 유연근무제, 장기근속자 주식부여(Stock grant) 제도 도입을 이끌었다. 왜 재무 전문가가 인사 담당자처럼 임직원 복지 개선에 매달렸을까. 상장 후 인원이 늘면서 현재는 회사 전체 평균 근속연수가 4년이지만 코스닥 상장도 버겁던 시절을 견디고 세계 1위 기업이 될 때까지 함께 버틴 이도 많다. 이들이 입사할 때 낳은 자녀가 초·중·고·대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오래 다니다 보니 직원들 가족을 생각하며 복지 제도를 개선해 왔다고 한다. 그래야 우수 직원들이 더 오래 다녀 회사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조 전무의 판단이다.
-금융 7년, 제조업 21년 경험했다. 입사 전후 포함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금융회사에서 제조업으로 온 것부터 큰 도전이었다. 제조업은 금융권과 달리 성장·전환(턴오버) 사이클이 길더라. 뭐든 금융보다 오래 걸려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가장 큰 도전은 코스닥 상장이었다. 2003년 회사에 합류할 때 3~5년이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12년 걸렸다.
-상장 과정에서 매출 증대, 증권시장 상황, 정부 정책 등 변수가 많았겠다.
▲두 번 좌절하고 세 번 도전했다. 2005년 코스닥 상장 외형 조건 중 하나가 자기자본이익률(ROE) 5%였다. 2003년 합류 당시 연매출 30억~40억원 수준이었다. 그 당시에도 대당 1억원이었던 원자현미경은 매출총이익률도 높았기 때문에 100대만 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2006년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했지만 충분한 이익을 내기 어려웠다. 영업을 위해 만든 미국 자회사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그 사이 상장 규정도 바뀌었다. ROE뿐 아니라 당기순이익 10억원 조건도 생겼다. 매출액이 200억원은 돼야 조건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 가장 어려웠던 세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연매출 200억원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니었나. 매출 아닌 다른 장애물을 만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극복하고 2012년께 연매출 200억원을 채웠지만 가장 큰 매출처였던 하드디스크 고객사 업황이 나빠졌다. 납품 실적이 뚝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적자 전환했다. 2013, 2014년 적자를 기록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대책을 논의하는 투자사도 있었지만 소송을 걸겠다는 투자기관도 있었다. 대놓고 '상욕'을 듣기도 했다.
-적자 기업으로 추락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중소기업에서 직원 이탈을 막기 쉽지 않았을 텐데.
▲비용 절감은 불가피했다. 2014년 직원 20%, 부서장 40%, 대표 50%씩 급여를 줄였다. 직원들에게는 주4일만 회사에 나와도 좋다고 했다. 제조업 기업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경영이 정상화되면 급여 감소분을 보상한다고 약속했다. 2014년 적자 폭을 줄이며 버티다 2015년 4월 기회가 왔다. 정부가 바이오 회사의 전유물이었던 코스닥 예비상장 기술평가 트랙 적용 기업 범위를 늘렸다. 적자 내도 기술이 우수한 기업이면 기회를 줬다. 한 달 뒤 이사회에서 '올해 안에 상장하겠다'고 했고 그해 12월17일 상장했다. 당시 임직원 100여명 모두 똘똘 뭉쳐 여러 평가와 심사에 대응했다. 역사의 페이지가 숨 가쁘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약속한 대로 2015년에 상황이 좋아지면서 2014년 급여 삭감분을 직원들에게 보상했다. 직원들은 급여 삭감, 회사 상장, 급여 보상을 회사와 함께 겪었다. 무엇보다 회사가 공수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보상해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회사의 변곡점에서 꼭 지키고자 했던 가치나 철학이 있었나.
▲나는 2003년에 합류했다. '닷컴 버블' 광풍 속 분식회계로 쓰러진 회사가 부지기수였다. 창업주인 박상일 대표가 '느리지만 꾸준하게 지속가능한 성장(Slow & Steady)'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상장하고 나니 오래 다닌 직원, 초기 투자자, 협력사, 투자기관 모두를 만족시키자고 하더라. 직원들은 '기술에 진심'이더라. 기술을 진지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대표와 임직원이 좋아지더라. 과학 기술 전문가가 아닌 재무통으로서 회사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졌다.
-직원을 무척 아끼는 것 같다. 혹시 스스로 주도한 복지 정책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출산 축하금과 입학 축하금 지급 제도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 출산 축하금 제도를 만들 때는 회사에 미혼 직원이 많았다. 그들이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 자녀 1명당 출산지원금 100만원과 어린이집 지원금 월 25만~30만원을 줬다. 상장 과정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회사를 떠나지 않은 여러 직원 자녀들이 이제는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올해 입학 축하금 지원 제도를 만들었다. 초·중·고·대학 입학 지원금을 준다. 초·중학교 입학은 수십만원, 고교는 100만원, 대학은 200만원씩 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원들이 복지포인트로 원하는 상품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복리후생 제도도 운영 중이다.
-직원만큼 고객도 아낀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세계 반도체 제조기업들과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같은 연구기관에 원자현미경을 납품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네덜란드 반도체 노광장비(EUV) 기업 ASML처럼 원자현미경계의 '슈퍼을(乙)'이라는 말로 고객을 유치하지는 않는다.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 기술 연구 기관은 고급 계측 장비를 갖추고 싶어한다. 수율(양품 비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결은 '정직'이다. 고객 요구 수준을 감당할 수 없는데 수주 실적을 늘리겠다고 덥석 '할 수 있다'고 공언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정확히 말하고 고객 요구대로 기술을 발전시킨다. 우리가 원자현미경 세계 1위 기업이다. 우리가 못하면 경쟁사도 못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다른 비결은 '기밀 유지'다.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관계없이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기술 종류와 수준이 다르다. 고객 정보가 없으면 우리도 장비를 납품할 수도, 만들 수도 없다. 고객사별 맞춤형 대응 과정에서 기밀은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
-재무통이면서 인사·복지 제도에 깊이 관여했다. 단지 회사와 직원을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회사 밸류업(가치 제고), 개인 밸류업을 하다 보니 CHO(최고인사책임자) 같은 CFO(최고재무책임자)가 됐다. 난 IR 담당자다. 하지만 시가총액이 아니라 회사의 고유가치를 높이기 위해 직원 복지를 고민했다. 우수한 직원들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재무통인 나도 인적자원(HR)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흔히 미래의 시총이 좋아질 것이라고 지금 당겨서 말한다. 이는 당장 현금 없는데 명품 사느라 카드 긁어놓고 내일 갚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내 가치를 높이면 내 몸값도, 회사 시총도 는다. 가치를 높이려다 보면 CFO인데도 CHO가 할 법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여성 직원, 임원으로서 회사를 21년간 지켜왔다.
▲회사 여성 직원 비중이 30%가량 된다. 연구개발(R&D), 제조, 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일한다. 성별을 떠나 파크시스템스인들은 자기 일에 진심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외형적으로는 오너가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한다. 하지만 일할 때는 맡은 일의 오너가 된다. 일에 필요한 공부를 한다. 뭘 공부해야 하는지 직원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진심으로 일하면 주변에 도와주려 하는 사람이 몰린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나도 주변을 도울 수 있다. 파크시스템스인들은 이런 선순환에 익숙하다. 담당 업무가 아니어도 자기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한다.
-직급과 업종을 불문하고 여성에게 경력단절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내 자녀가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다. 나는 출산휴가를 3개월도 못 썼다. 육아휴직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자랐다고 생각한다. 해법은 유연근무제 확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유연근무제와 육아휴직제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 지식 노동자다. 협업을 위한 IT 툴(tool)도 많기 때문에 육아기 임직원의 경우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업무에 집중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본다. 남녀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경력을 단절할 정도로 긴 시간을 육아에 쓴다고 반드시 아이가 잘 큰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부모를 보고 자녀가 배우는 점도 많을 것이다.
-여성 후배, 동료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쉬운 일이면 내가 맡을 이유가 없다'는 일종의 프라이드(자부심)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풀어야 할 일이라면 그게 나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일을 꼭 해결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면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게도 된다. 도움을 받으면 내가 도울 일도 생긴다. 자기 발전에 필요한 일을 하는 과정이라면 반드시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역량을 키우기 쉬워진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능동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막연하게 사수에게 배우고 싶어하고 학위를 따고 싶어하는 방식은 안 된다. 수동적인 방식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수동적이면 발전하기 어렵다.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크게 관심 없던 정부 정책도 듣게 되고 관련 인물을 찾아다니게 된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포기하지 말고 일을 완수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한다.
조연옥 전무는
금융권에서 7년, 제조업에서 21년 일한 재무통이다. 1991년 한화종합금융 자금부에서 콜거래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미국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그 해에 제조업 기업 파크시스템스에 합류했다. 입사 후 12년간 도전해 2015년 회사를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바꿔놨다. 상장 9년 만에 회사 시총을 20배가량 늘렸다. 회사를 시총 '1조 클럽'에 올렸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Executive MBA(EMBA)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대표, '기술과 자기 일에 진심'인 500여명 직원이 좋아서 회사에 계속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