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레바논 전역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쓰는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9명이 숨지고 2750명이 다쳤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폭발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했다. 레바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2750명이 부상당했다. 이 중 부상자 200명은 위독한 상태다.
폭발은 이날 오후 3시30분께부터 1시간가량 계속됐다. 일부는 호출이 울려 피해자들이 화면을 확인하는 도중에 폭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상자가 손을 다쳤고, 일부는 복부에도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레바논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호출기가 폭발해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부상한 것으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파악했다.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이란 언론들이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를 이스라엘로 지목하고 보복을 다짐했다. 헤즈볼라는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마스는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도 이날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레바논 정부는 내각회의 이후 "레바논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범죄적 공격을 만장일치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아드 마카리 레바논 정보장관은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기 위해 유엔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호출기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청했다.
헤즈볼라는 최근 통신보안을 위해 호출기를 도입했다. 지난 2월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될 수 있으니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당부한 이후부터다. 이날 폭발한 호출기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호출기는 과거 국내에서 '삐삐'로 불리며 호출음이나 단문 메시지를 주고받던 통신기기이다.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 디지털인권단체 'SMEX'는 이스라엘 측이 기기를 조작하거나 폭발 장치를 심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 측은 폭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폭발 사건은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레바논과 접경지역인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의 안전한 귀환을 전쟁 목표에 공식적으로 추가한 지 하루도 안 돼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