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전영주기자
e(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피해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상거래 안정성을 해친 전자금융거래의 불완전한 관리와 감독시스템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수년에 걸친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위험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자상거래 규율 체계는 무능했고,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사)로 등록된 기업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의 시스템은 맹탕이었다.
1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는 유통 플랫폼이 상거래 대금을 임의로 적극 활용한 ‘도덕적 해이’와 이를 사실상 방치한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에서 비롯됐다. 이커머스 기업인 티몬·위메프는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래 대금을 회사 경영상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했다. 은행 등 제3자가 결제대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물품공급·용역서비스가 완료된 이후에 판매자에 대금을 지급하는 ‘에스크로(escrow)’ 시스템이 없었던 결과다.
이 때문에 티몬·위메프의 경우 소비자로부터 받은 돈을 길게는 70일가량 가지고 있다가 판매자에게 정산하면서 사실상 무이자로 자금을 차입하는 효과를 누렸다. 더욱이 7~8% 할인한 가격에 판매한 상품권은 일반 기업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어음(CP)처럼 쓰였다. 유통업체가 유사수신을 통해 해당 자금을 목적과 다르게 전용한 것이다.
이커머스에 대한 규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융당국은 전자금융거래법 28조에 따라 티몬·위메프 등 일부 유통사·플랫폼 업체를 PG사로 분류해 감독 대상에 포함했다. 전금법 42조와 전자금융감독규정 62조에 따르면 티몬·위메프는 등록한 전자금융업자로서 관련 업무와 실적을 정기적으로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등 각종 의무가 부과된다. 특히 전자금융감독규정 63조는 PG업자에 대해 자기자본이 0 초과, 미정산 잔액 대비 투자위험성 낮은 자산 비율 100% 이상 유지 등 경영지도 비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이 티몬·위메프의 부실 징후를 일찍이 포착하고도 미정산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허가가 아닌 등록업체에 대한 입법 공백 또는 관련 규정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등 허가업체는 금융위원회 심사를 거쳐 인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PG업체와 같은 등록업체는 법에 따른 형식적 요건을 갖춰 금융위에 등록만 하면 된다.
전금업자의 건전성·유동성이 악화했다면 금융당국은 금융위 허가를 받은 업체에 한해 전자금융감독규정 64~66조에 따라 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전금법 42조3항을 적용해 자본금 증액을 요구하거나 이익배당을 제한할 수 있고, 4항을 통해 영업정지나 인허가 취소, 과태료 부과 등 조치도 가능하다.
반면 등록업체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대책은 경영개선협약(MOU) 체결에 그친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MOU상 경영개선계획에) 응하지 않을 때, 강제적 방법으로 영업취소·정지 그에 준하는 과징금 조치 수단이 없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공정위·금융위·금감원·한국소비자원 등이 이커머스 산업과 관련돼 있지만 정작 거래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정산대금을 보호할 장치는 갖추지 못했다. 다음달 시행되는 전금법 25조의2는 전금업자가 선불충전금을 별도 계좌로 관리하고, 금융위는 관리상황을 분기별 점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의 판매대금과 관련해선 아직까지 규정이 없다. 결제대금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이커머스 기업의 손에 달린 것이다. 이 원장은 국회 정무위 현안질의에서 “강한 규제체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긴요한 것 중심으로 입법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융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금감원은 문제를 확인하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플랫폼의 거래액이 운영자금보다 지나치게 많지 않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거래대금을 제3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상품권을 무리해서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등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커머스에 대한 규제가 제각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할부처가 공정위·금융위 등으로 중첩돼 있고, 규제는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상거래법, 전금법, 여신전문금융법 등으로 흩어져 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이 사안은 상거래와 금융거래가 결합된 전자상거래 이슈여서 어느 한 기관이 전담해 감독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PG 사업자를 비롯한 이커머스 관련 관리·감독체계를 손질해 역할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여러 부처로 중첩된 이슈라면 최소한 경제 컨트롤타워가 역할을 해야 했다”며 “이번 사태에선 경제부총리나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의 역할이 부재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티몬·위메프는 판매자이자 중개자여서 공정위와 금융위 간 교통정리가 먼저 필요하다”며 “두 부처가 전금업자라는 새로운 업종에 대한 법안을 조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티몬과 위메프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정산주기 의무화’ 등을 규정한 대규모유통업법과 하도급법 개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관할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가 ‘자율규제’를 탓하며 책임을 돌리는 행보를 보였던 공정위가 결국 제도상의 미비점을 인정하고 보완에 나선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8일 정산지연 사태 직후 티몬 측이 발표한 정산 오류라는 입장만을 신뢰하고 소비자 피해주의보 등 예방적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한기정 공정위장이 자율규제 방침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고 제도 미비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안일한 대응에 그쳤던 셈이다.
금융위도 뒤늦게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인사청문회 후 9일 만에 취임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전일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전자상거래 및 전자지급결제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거래질서와 엄격한 규율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사태로 드러난 이커머스 영업과 관리·감독상 문제점을 원점에서 철저히 재점검해 제도 개선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산자금 안전관리, 정산주기 단축 등 판매자·소비자에게 불리한 영업관행을 개선해 이커머스 산업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PG사에 대한 관리·감독상 미비점도 개선해 건전경영이 확보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