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누구나 유언장 하나쯤은 품고 사는 사회 꿈꿔요'

서지수 망고하다 대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전에 70대 이상 어르신들만 100명 넘게 심층 인터뷰했어요. 그중에는 부유한 분도 있고 가난한 분도 있죠. 지방 노인정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그냥 A4 용지에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유언장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맙고 미안하다'로 시작해서 '내가 가진 얼마는 장남인 누구한테 줬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이요.

그러나 작성 연월일, 서명 등 자필 유언장의 요건과 디테일을 갖추지 않아 법적 효력이 없어 안 쓰느니만 못한 유언장이었습니다. 그런 글은 오히려 남은 가족 간 불화를 유발할 수 있어요. 반면에 프리미엄 실버타운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이미 다 변호사를 끼고 유언장을 써놨더라고요."

서지수 망고하다 대표가 15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망고하다

지난 15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서지수 '망고하다' 대표(29)는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유언장을 남기고 싶은 의지는 있으나, 잘 모르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제대로 된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깨닫고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유언장 작성에 대한 보편적 욕구와 계층 간 정보 격차를 발견한 그는 "모든 사람이 쉽고 정확하게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21년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처음 선보인 게 망고하다의 주력 제품 '엔딩노트'다. 유언작성 시 도움이 되는 내용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온 삶과 인생에 즐겁고 아쉬웠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갈지 적어보는 노트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문답 영역, 재산정리표, 버킷리스트, 장례 방식에 대한 희망사항 등을 정리해볼 수 있게 구성돼있다.

2019년 개인사업자로 시작해 지난해 법인으로 전환한 망고하다는 단순히 '잘 죽는 법'을 넘어 '좋은 삶'을 추구하는 웰다잉 플랫폼을 지향한다. 회사명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어두운 인식을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연을 풀어 하늘로 올려보내다'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그는 "좋은 죽음이 있으려면 좋은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하며 "전 국민이 유언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장기 목표"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졸업생이다. 실버 사업을 창업함으로써 전공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그가 현재 4명의 직원과 함께 운영 중인 망고하다는 내년 또한 투자 유치와 소셜벤처기업 인증 획득 계획도 세우고 있다.

서지수 망고하다 대표가 자사 제품 '엔딩노트'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망고하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실버산업학과를 전공하고,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대학 시절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나중에 따로 불러서 이 아이템으로 창업하라고 진심으로 권유하시더라. 덕분에 지금의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졸업 후 잠시 복지관에서 일하다 창업의 길을 택했다.

-사업 모델은 어떻게 되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온오프라인 유언장 작성 플랫폼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향후 인공지능을 탑재해 유료화할 계획이다. 텀블러와 스티커 같은 굿즈도 판매하며 장례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엔딩노트는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첫선을 보였으며 현재까지 반품률 0%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 노트를 사가는 일본인들도 있어 일본어 번역본도 있다.

-장례 컨설팅 서비스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장례 준비부터 사후 제사까지 상담해주는 서비스다. 아직 1년에 한 두 건 정도 하는 수준인데, 앞으로 더 확장할 계획이다. 어떻게 유언을 남겨야 하는지, 장례 방식은 뭐가 있는지 등을 상담해준다. 얼마 전에도 낚시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사망했다는 유가족분들에게 해양장을 추천해드렸다. 물론 시중에도 이런 상담회사들이 있는데 장례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망고하다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라는 게 차별점이다.

-엔딩노트에 관련해 받은 피드백 중 인상 깊었던 걸 꼽아달라.

▲평소에 유언을 작성해뒀다는 사용자가 있었다. 꼭 죽기 직전에 쓰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런데 남들이 알면 괜히 우울해 보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는 오해를 사기 쉬워 몰래 썼다더라. 아기자기한 노트 형태로 나온 엔딩노트 덕분에 숨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망고하다가 유명해져서 모두가 유언을 써두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해주셨던 게 떠오른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21년 피벗(pivot·정책 전환) 당시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새벽 4시 개발자에게서 긴급 전화가 왔다. 우리 플랫폼에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즉시 관계 기관에 신고하고, 자문하고 있던 변호사, 심리상담사, 교수님들과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논의 끝에 애플리케이션(앱)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이 사건은 팀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웰다잉 플랫폼'이 이런 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사업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내가 뭔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다. 그래서 회사의 방향성을 철저히 재검토했다.

그 결과 '좋은 죽음이 있으려면 좋은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한 거다. 다행히 몇 주 후 그 글을 올렸던 분에게서 (신고로 살려줘서)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서비스의 진정한 의미와 책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됐다.

-최근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금융사, 로펌 등이 유언장 작성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이들과 경쟁할 수 있나.

▲솔직히 자본 등 규모로 본다면 경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협업 방식을 통해 일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우리가 단순히 법적 문서 작성을 돕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과 가치관을 반영한 유언을 만들 수 있도록 좀 더 디테일과 감성에 공을 들인다고 자신할 수 있다. 덕분에 지난해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기부단체 초록우산과 함께 유언 문화 확산을 위한 '처음 쓰는 유언' 캠페인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러한 협업 기회를 찾아나설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10년 후에는 전 국민이 유언장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게 하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유료 플랫폼 개발, 굿즈 사업 확대, 그리고 장례 컨설팅 서비스 강화 등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투자 유치와 소셜벤처 인증 획득도 준비 중이다. 투자받아서 확실한 J커브(급격한 성장곡선)를 그리며 올라가고 싶다. 내년 매출 18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금융부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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