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3세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쇠퇴(Democratic backsliding)’의 시기에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복귀하는 것은 미 민주주의에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소추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 혼자 초래한 위기"라고 꼬집었다.
후쿠야마 교수는 2일 공개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 영문판에서 세계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경제성장을 지탱해온 민주주의가 시험을 맞이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1989년 논문 ‘역사의 종말?’을 통해 냉전 종식 이후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상을 예고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후쿠야마 교수는 관련 내용을 확장한 베스트셀러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등으로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석학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이달 취임을 앞둔 트럼프 당선인이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를 주장해 왔다는 점을 꼬집으며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 선거에 대한 공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2024년 미 대선은 단순한 정책 선택 그 이상이었지만 미국 국민들은 불법적으로 공직을 유지하려 한 그(트럼프)를 택했다"며 "그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인플레이션과 남부 국경통제 실패에 따른 이민자 급증 등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유 민주주의의 ‘자유’를 지지하는 법치주의는 점차 쇠퇴 중"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반대 세력을 처벌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캐시 파텔 전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을 차기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는 "국가권력을 이용해 정적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후쿠야마 교수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 끝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려되는 점은 러시아, 중국이라는 거대한 권위주의 2개국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불행히도 20세기에 보았던 장면으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미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고 헝가리, 인도 등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특히 후쿠야마 교수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별도로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비상계엄 선포 논란은 국회 교착상태에서 좌절한 윤 대통령 혼자 초래한 위기라고 본다"며 "탄핵안은 지금까지 저질러진 실수의 규모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또한 "(윤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고 사임해야 하지만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같은 중요한 국가에서 리더십 부재의 위기가 수개월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후쿠야마 교수는 민주주의 쇠퇴를 경고하면서도 "이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권력이 개인, 가문에 집중되는 독재정권은 궁극적으로 불안정하며, 사람들은 그런 사회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최근 독재 정권이 무너진 시리아를 언급했다. 이어 "자유 민주주의가 인기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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