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측에 대외 환경규제에 대한 초당적 지지 여론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을 중요 의제로 삼는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자국 기업 살리기를 위해 ‘녹색무역장벽’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차기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녹색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USTR 관계자들은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환경협력위원회(ECC) 및 환경협의회(EAC)에서 우리 측 참석자들을 만나 “외국오염수수료법(Foreign Pollution Fee Act, FPF)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가져가려는 정책”이라면서 “기후에 대한 영향을 주는 법에 대해서는 양당의 초당적 지지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오염수수료법은 지난해 11월 빌 캐시디, 린지 그레이엄, 로저 위커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이다. 세 의원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법안은 미국 국경을 넘은 수입제품의 오염도를 따진 뒤 정도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 제품에는 수수료를 전혀 부과하지 않고 외국 제품에만 적용하는 전형적인 녹색무역장벽이다. 현재 상원 통과 전 재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수수료 부과 대상은 천연가스, 석유, 수소, 태양광 패널 등의 에너지제품과 알루미늄, 시멘트, 유리, 철, 종이 등의 산업제품으로 나뉜다.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오염도를 측정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오염치가 10% 이상 높으면 수수료를 낸다. 심지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라 할지라도 미국 제품보다 오염도가 50% 이상 높으면 수수료 부과 대상이 된다. 수수료는 오염 수준에 따라 다르게 책정한다. 또 제품 범위와 수수료율을 3년마다 재산정해 미국 기업들이 제재 대상 품목을 청원할 수 있도록 했다.
USTR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향후 대외 환경규제가 강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환경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예측과 정반대다. 트럼프 후보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인물이지만, 녹색무역장벽은 본인이 제시한 미국 우선주의와 부합한다. 환경을 빌미로 외국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외국오염수수료법을 발의한 공화당 의원들도 기후위기를 부정하거나 미국 내 화석연료 발전을 지지하고 있다.
외국오염수수료법이 대중국 압박에 유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미국 보수성향 외교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의 윌리엄 앨런 라인시 수석고문은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환경보호 규범을 무시한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법안 발의자들도 지금의 무역 시스템이 중국 공산당의 오염 배출을 허용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도 공화당의 외국오염수수료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인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이런 법이 제출돼서 기쁘다”면서 “캐시디 상원의원이 지금의 법을 만들기까지 여러 좋은 일들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캐시디는 매우 유능한 입법자”라면서 “외국오염수수료법이 검토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녹색무역장벽이 가시화하면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서 미국의 대선 결과를 주목하고 있는데, 이미 미국은 주요 기업과 산업의 환경 데이터를 초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면서 “녹색산업으로의 전환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