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수기자
숙박 플랫폼 ‘야놀자’가 미국 나스닥(NASDAQ) 상장(IPO)을 택했다. 미국 기업으로 상장하기 위해 미국의 조세회피처(Tax Haven)라 불리는 델라웨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고 한다. 상장 기업가치가 자그마치 10조~12조원으로 거론된다. 5000만원으로 시작한 모텔 대실 사업이 10조원 넘는 숙박 플랫폼으로 성장해 미국 땅을 밟는다니 축하할 일이다. 네이버웹툰도 최근 기업가치를 높여 받을 수 있는 나스닥으로 방향을 잡았다. 칼을 뽑아 들었으니 성공적인 상장으로 투자에 사용할 해외 자본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길 바란다. 확보한 자금으로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해 ’부킹닷컴’, ‘트립닷컴’ 등의 쟁쟁한 플랫폼들과 경쟁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로컬에 머물러 있는 국내 플랫폼의 글로벌화에 성과를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주식시장이 토종 플랫폼 기업을 받아낼 그릇이 안된다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요즘 개인 투자자들도 미국 시장으로 너도, 나도 빠져나간다는데 잘 나가는 신예 토종 기업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도 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며 삐딱한 시선을 받던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우리 땅에서 만든 유통 플랫폼 ‘쿠팡’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을 때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쿠팡이 상장하면서 뉴욕 맨해튼 증권거래소 벽에 내 건 태극기를 보면서 아쉬움이 조금 달래지기는 했다.
미국 시장을 택하는 플랫폼 기업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 기업들 모두 한국 시장에서는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거나 시달리고 있다. 50조원의 기업가치로 상장한 쿠팡은 한국 코스피 상장을 고민하면서 국내 주관사 후보들로부터 5조원 정도의 기업가치 제안을 받았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10배를 제안했으나 선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10조~12조원으로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야놀자도 국내 주관사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으로는 외국계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숙박 플랫폼 경쟁사인 ‘여기어때’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1조원 내외로 거론되고 있다. 야놀자가 10조원 가치로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매각을 접고 나스닥 상장으로 방향을 튼다는 얘기도 들린다.
"적자 기업인데 말도 안 돼", "지나친 고평가야", "밸류에이션 방법이 회사에 너무 유리해", "고가에 투자한 투자자들 다 물린다" 등의 비판 또는 비난이 가능하다. 쿠팡 상장 때는 심지어 ‘밸류에이션 사기’라는 얘기도 나왔다. 쿠팡의 시가총액은 상장 후 한 때 한화로 100조원까지 증가했다가 적자가 지속되면서 20조원대까지 장기 하락 추세를 보인 이후 최근 50조원 수준을 회복했다. 김 의장은 신주 발행으로 확보한 수십조원의 자금으로 미국의 아마존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물류시스템을 속도감 있게 구축해 압도적인 국내 1위 유통사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기업인데 한국에서는 5조짜리고 미국에서는 50조짜리가 되는 이유는 뭘까? 천조국 주식시장에 몰려 있는 투자자금이 어마어마해서인데 단숨에 따라잡기는 어렵더라도 조금 더 우리 주식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만으로 글로벌 투자금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 금투세는? 상속세는? 공매도는? 상장절차 등의 자본시장 제도는? 공정과 형평, 투자자 보호도 좋지만 여러 방면에서 시장의 매력을 높이려는 고민을 하지 않으면 투자자도 유수의 기업도 해외 시장으로 빼앗기는 상황을 계속 목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