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틈이 없어요' 입주민들과 여행 가고 동아리 활동까지…'위스테이별내' 풍경[르포]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 아파트
60세 이상 위한 카페도…노인들 외로움 느낄 새 없어
주민끼리 돕는 공동육아로 부모들도 높은 만족도

77세 김연진 할머니는 요즘 요가 동아리에 푹 빠져있다. 40년 동안 요가강사로 일했던 그는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과 주 5일 유튜브 영상을 틀고 요가 동작을 따라서 한다. 운동하고 나면 다 같이 모여 차 한 잔과 함께 수다를 떤다. 수요일엔 각자 도시락을 싸 와 밥을 나눠 먹는다. 동아리 회원들의 공통점은 하나. 바로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아파트'의 입주민이라는 점이다. 김연진 할머니는 "얼마 전 살던 집을 팔고, 딸과 함께 이곳에 입주했다"며 "아파트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78세 서재분 할머니도 지난 봄 아파트 경로당 회원들과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주말에는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갈 예정이다. 때론 위아래 층에서 아이가 음식을 항아리째 들고 오기도 한다. 그는 "여긴 아파트살이가 아니라 마을살이"라며 "성씨는 각자 달라도, 집성촌처럼 어울려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방문한 위스테이별내는 4호선 별내별가람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역세권 신축 아파트다. 겉보기엔 여느 신도시아파트와 같았지만, 시설을 좀 더 들여다보니 조금 달랐다. 프랜차이즈 편의점 옆에는 어르신을 위한 카페가 마련돼있었다. 60세 이상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의 '60플러스센터' 안에 할머니 4명이 테이블에 과일을 깎아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매년 100명 중 1명은 고독사할 정도로 노인의 외로움이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지만, 위스테이별내에 사는 노인들은 외로울 틈이 없다. 강형욱(83) 씨도 "추석엔 추석 맞이 행사를 하고, 보름엔 찰밥을 나눠 먹고, 설엔 떡국을 끓여서 같이 먹는 등 단지에서 열리는 세시풍속 행사가 마음에 쏙 든다"며 "이곳에서의 생활이 예전에 살던 그 어떤 아파트에서보다 만족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위스테이의 주요 커뮤니티 시설 이름엔 모두 동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단지의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싸인 모습이다. (사진=박재현 기자)

'아이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도 입소문

위스테이별내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아파트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조성한다는 취지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4인 가구가 살기 좋은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84㎡ 표준형 기준 보증금은 1억 1000만원, 월세 40만 6000원이다. 가장 작은 60㎡ 표준형은 보증금 8500만원, 월세 27만5000원이다. 최대 거주기간은 8년으로 넉넉하다. 다만 입주민이 되려면 조합원이 돼야 한다. 출자금은 60㎡가 3500만원, 74㎡와 84㎡가 4000만원이다. 이 출자금은 나중에 이사하며 조합에서 탈퇴할 때 그대로 반환된다.

입주 3년 전부터 모인 첫 입주민들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조합원으로 가입해 함께 아파트를 설계했다. 2018년엔 명동에 모델하우스까지 선보였다. 입주하는 해였던 2020년엔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체위원회, 교육위원회, 비즈니스위원회까지 만들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입주민들은 직접 일자리도 만들어 근무할 만큼 커뮤니티 활동에 '진심'이다. 지금 이곳에는 총 491세대에 약 1500명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 중 40%가 어린이다.

공동체 활동에 초점을 맞춰서 단지 내 마련된 커뮤니티 시설은 법정 기준보다 2.5배 크다. 곳곳에 목공 자재와 시설을 지원하는 '동네목공소', 각종 운동기구와 스포츠 클래스를 제공하는 '동네체육관', 총 44가구가 이용할 수 있는 공용 텃밭, 입주민들의 쉼터가 돼주는 '동네카페' 같은 공용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빨래가 필요할 때 세탁기에 코인을 넣고 쓸 수 있는 ‘동네빨래방’, 추석이나 설날처럼 특별한 날에 함께 모여 반찬을 만들어 먹는 '동네부엌'도 있다.

주민들의 취미 생활을 돕는 '동네창작소'의 모습이다. 이곳엔 아이들의 공간인 동네우주선과 동네방송국, 동네목공소가 있어 자유롭게 취미를 즐길 수 있다. (사진=박재현 기자)

만족도가 높은 건 어르신뿐만이 아니다. 위스테이별내는 남양주시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 입소문이 나 있다. 육아하다 보면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이곳에선 공동 육아가 자연스럽다. 옆 단지에서 이사를 온 40대 여성 정혜민씨는 "아이가 혼자 집 밖을 나서도 지나가는 이모, 할아버지가 서로서로 돌봐주니 안심이 된다"며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서 해열제가 필요하다’는 요청에 모두가 발 벗고 도움을 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30대 여성 김혜민(가명)씨도 "둘째 아이가 야구방망이에 코를 맞아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는데, 부모님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럴 때 입주민들이 보호자 역할을 자처해 병원에 함께 가줬다"고 이웃들에게 고마웠던 순간을 회상했다.

아파트 인프라도 아이를 키우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단지 내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어린이들의 하교 후를 돌봐주는 방과 후 돌봄센터 '놀자람'이 있다. 미취학 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한쪽에 마련돼있다. 돌봄센터 운영자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이곳에서 전업으로 상근한다. 이들은 모두 위스테이별내 입주자들이다. 운영비는 시에서 지원해주고, 위스테이별내는 위탁 운영을 하는 형태다.

오후 4시쯤 방문한 이곳 센터에는 저학년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었다. 각자 학교를 마치고 이곳에 모여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방과후 학교인 셈. 아이들은 각자 만화책을 펼쳐 읽거나, 만들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 왼쪽 벽엔 붙어 있는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어린이자치회의 안건’이 적혀 있었다.

센터에서 나와 '동네책방'을 방문했다. 누구나 들러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조용한 열람실 분위기의 2층과 아이들로 북적북적한 1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 한구석엔 어린이 작업실 ‘모야’가 있다. 이곳에선 8~13살 어린이라면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책방 선반에는 아이들이 만든 발명품이 전시돼있었다. 휴지심으로 만든 비행기부터 나무막대기와 플라스틱 병뚜껑을 이용해 만든 자동차까지. 책방 벽 곳곳에는 어린이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어 활력을 더했다.

이웃끼리 반찬을 나눠 먹고, 날이 좋을 땐 함께 나들이를 가고, 어른과 아이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 위스테이별내는 높이 솟은 아파트가 주는 차가운 느낌을 벗어던진 채 '마을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상우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는 “공공에만 의존하는 사회복지 행정체계는 한계가 있다”며 "위스테이별내는 이렇게 실제 살고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레 상호돌봄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동네자람터인 '놀자람' 벽면에 붙은 어린이자치회의 안건이다. 아이들은 방과후 이곳에 모여 규칙을 정하고 시간을 보낸다. (사진=박재현 기자)

경제금융부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경제금융부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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