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진기자
중국 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손들이 중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진행된 소송 및 판결을 참고했다.
21일 중국 매체 현대쾌보의 중국 '위안부'문제연구센터에 따르면 허우둥어 할머니 등 중국인 피해자 18명의 자녀·손자녀는 지난 8∼10일 산시성 고급인민법원에 일본 정부 상대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원고인 피해자 18명은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다.
이번 소송은 중국 최초의 '위안부' 피해자 민간 조사자인 장솽빙 소송단장이 이끈다. 장 단장은 1982년 어렵게 살고 있던 허우둥어 할머니를 우연히 만난 뒤 중국 내 다른 피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42년 동안 1000명 이상의 피해자를 만났고, 이 가운데 139명이 일본 정부의 배상을 받겠다며 공식적으로 나섰다.
그는 피해 자료를 수집해 1992년부터 일본 법원에 소송을 시작했다. 2007년까지 총 9번의 재판이 있었고,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소송 시효가 이미 지났으며 일본 법률상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배상하지 않는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장 단장은 중국 법원에서 새로운 소송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사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며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을 도와 소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그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한국 판결 결과는 내가 중국에서 일본 정부에 소송을 낼 생각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1년 故 배춘희 할머니 등 한국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이 내세운 '국가면제'(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이나 타국 재산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으로 '주권면제'라고도 함)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 판결은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비슷한 시기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이용수 할머니 등 16명이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국가면제 논리를 수용해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했지만, 작년 11월 2심은 이런 1심 처분을 취소하고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 2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역시 확정됐다.
지난해 장 단장은 중국 인권 변호사 자팡이에게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문을 보내면서 소송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자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앞선 일본 도쿄고등재판소 판결에선 1972년 체결된 '중일공동성명'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인민 우호를 위해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는 구절이 쟁점이 됐다. 중국 정부가 이미 배상 권리를 내려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 변호사는 공동성명 내용이 '중국 국가의 배상 청구권'에 국한되고, 국제법과 국제 협약에 따라 전쟁 민간인 피해자 개인의 인권 침해 배상 청구권은 소멸시효와 국가면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 계획이다.
자 변호사는 중국 법원이 일본의 소멸시효와 국가면제 논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 변호사는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 "국가 사법 주권의 표현"이라며 "한국 법원은 합법적인 판결 이후 강제집행을 위해 한국 정부에 일본의 한국 내 자산 목록 공개를 요구했는데, 이는 중국 피해자들에게 참조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가 사과와 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판결과 강제집행, 집행 판결, 화해 과정에서 우리의 요구 조건이 그들(일본)의 진심 어린 참회와 사과를 재촉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고 했다.
쑤즈량 '위안부'문제연구센터 주임(상하이사범대 교수)은 "이번 소송의 의미는 특별하고 산시성 고급인민법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법원이 모두 중시하기를 희망한다"며 "아직 침략 일본군의 세균전 피해자와 강제노역 피해자, 동북 지역 가스탄 피해 등 전쟁이 남긴 많은 문제의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