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국가도 흔들린다…경제 손실만 11조원 이상[청년고립24시]

<4>고립의 이유와 사회적 비용
②경제 손실 11조원 이상 추정
청년고립,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
당뇨 등 발병률 높여 의료서비스 이용도 증가
고립으로 사회관계 단절되면 저출생 원인 되기도

편집자주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고립 청년을 왜 도와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고립이 자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없고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고립 청년들은 위기 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 정부가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미 태어난 청년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20·30대 청년의 고립·은둔 위기가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립·은둔 청년 54만명의 고통은 가족을 포함한 100만명 이상에게 직접적 타격을 입히고, 그들이 속한 기업과 사회에 경제·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가 사회 이슈로 더욱 확대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 취약 청년의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신림동의 옛 고시원들은 대부분 원룸 건물로 개축되어 거리를 배곡히 메우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생산성 저하 등 갈수록 다양한 사회문제화

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과 이들을 지원하는 현장 전문가들은 '가족 구성원 중 한 명만 고립돼도 가족 전체가 붕괴한다'고 했다. 정부에서 파악한 고립·은둔 청년이 54만명이라면 이들의 가족을 포함해 100만명 이상이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그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어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방치할 경우 각종 사회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회의 성장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청년층의 고립·은둔 문제는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고립·은둔 청년은 외부활동이 줄어들거나 단절돼 일자리 없이 지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재단의 고립 청년 연구에 따르면 고립 청년 가구가 생계급여와 실업급여를 수급할 확률은 비고립 청년 가구에 비해 각각 2.44배, 2.1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고립된 청년의 경우 회사에서 성과가 낮거나 협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립으로 인해 결근·이직 가능성이 높고 직무성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미국 보험회사 시그나는 '외로움이 미국 직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외로운 근로자는 외롭지 않은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며 외로운 근로자 1명당 고용주에게 연간 약 4200달러(약 575만원)의 손해를 발생시킨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고립 청소년이 청년→중·장년→ 노년으로…"생애주기별 중장기 로드맵 필요"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고립·은둔의 특성상 한번 위기 상황에 빠지면 문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특히 청소년, 청년기에 고립·은둔 상황에 놓이면 중장년,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국내 고립·은둔 청소년(만 13~18세)을 약 14만명 규모로 추정한다. 전체 청소년 인구의 5.2% 수준이다. 학교 폭력, 부적응 등으로 시작되는 10대의 고립은 청년기부터 본격적인 은둔으로 이어지기 쉽다. 청년기 고립으로 사회생활에 장기 공백이 생기면 중·장년기와 노년기까지 상흔효과(과거에 누적된 피해가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가 생겨 취업·결혼 등 사회 복귀가 더욱 어려워진다.

1990년대부터 히키코모리 문제가 대두됐던 일본의 경우 현재 중장년 히키코모리가 늘면서 '8050 문제'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80대 노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연금 수입으로 먹여 살리다가 빈곤에 빠지고 노인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는 것이다. 은둔이 장기화하면서 부모와 자녀 등 가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의 고립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점차 증가할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고립·은둔 청년이 되고, 또 고립·은둔 청년이 중장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산과 행정력이 수반된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회·경제적 손실 11兆 이상…"생애주기별 장기 플랜 필요"

이미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로 우리 사회가 수조원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청년재단은 지난해 '청년 고립의 사회적 비용' 연구에서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연구는 인구총조사의 만 19~34세 인구에 2019년 사회조사(통계청)의 고립 청년 비율 3.1%를 적용해 경제비용, 정책비용, 건강비용을 산출했다.

우선 고립·은둔 청년의 소득이 줄고 직무성과가 떨어졌으며 출산을 하지 않아 자녀 생애소득 기대분이 사라지는 등 이로 인해 발생한 경제비용은 6조7478억원에 달한다. 또 직접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실업급여 등을 받아 발생하는 정책비용이 2000억원 정도. 고립 청년의 의료서비스 이용에 따른 비용은 최소 293억원, 최대 435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2019년 고립 청년인구 34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매해 2100만원의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연구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산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5년 새 고립·은둔 청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더욱 확대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진은 코로나19 기간에 고립 청년 비율이 5%로 더 증가했으며 이 수치가 유지될 경우 연간 비용이 7조원이 아닌 11조6000억원으로 증가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연구진은 "고립 청년 비중이 7%까지 증가하면 16조2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추정치 54만명에게 매년 1인당 2100만원의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단순 곱셈만으로도 매년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연간 11조3400만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립 청년에게 사회 서비스나 현금 급여 등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 단기적인 비용은 증가하겠지만, 이를 통해 고립이 해소되면 추후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고립·은둔 청년 지원단체 파이나다운청년 이사장인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이렇게 가다간 고립·은둔 청년이 100만, 200만, 300만이 될 수도 있다"며 우리 사회가 고립·은둔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 협의회 회장인 이동훈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주제는 전 연령대에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며 "특히 이 청년 세대들이 30대, 40대, 50대가 되면 몇십년 뒤에는 일본처럼 고독사 문제까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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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부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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