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의지와 상관 없이 '취업' 그 하나 만으로 나홀로 지방행을 택한 4명의 젊은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족, 친구와 떨어져 어쩔 수 없는 독립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 아픈데 혼자라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때 특히 자신이 고립돼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평생 수도권에 살다 전북 전주시로 갓 이사한 마케터 석지혜씨(26·가명)는 취업 때문에 지방행을 택했지만 일상의 고민과 감정을 나누지 못해 매일 혼자인 기분을 느끼고 있다. 탈모 관련 기업에서 일하다 보니 회사에도 또래 동료가 없어 더욱 고립감이 심해졌다. 외로운 감정 단계를 넘어 이대로 계속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다.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강민혁씨(29·가명)는 발령 3일전에야 공문을 통해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 사실을 접했다. 경기도 부천의 집을 떠나 충청북도 충주시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새 터전에서 강 씨는 혼자다. 새 동료와 친해져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 직장에서 소문이 나거나 이야기가 와전될 위험이 있어서다. 강 씨는 "직원들의 거주지, 개인적인 사정, 선호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인사발령을 낸다"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없고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물론 마음만 먹으면 퇴사하고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청년 취업이 심각한 시대에 살면서 어렵게 들어온 직장을 퇴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가족에겐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면 걱정해요. 친구들은 일하느라 바쁘니까 제가 고민을 털어놓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를 봐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혼자 감정을 삭히고 버텨요. 그렇게 힘내보는 겁니다."
2년간의 공무원 시험 준비 끝에 합격증을 손에 쥔 공무원 주상은씨(27·가명) 역시 첫 출근 7일 전에 발령을 통보받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던 과거 경험 탓에 운전 트라우마를 겪던 주씨가 운전을 배운 이유 중 하나는 주말에 근무지를 떠나기 위해서다. 그의 본가인 경남 김해시까지는 자차로 왕복 4시간30분, 기차로도 4시간40분가량이 걸린다. 주씨는 "퇴근 후 온전히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 고립감을 강하게 만든다"며 "지역 청년 커뮤니티에 가입해보려고 찾아봤지만 대부분 지역 출신이거나 아예 정착한 청년 귀농인, 자영업자여서 섞이기 어려웠다. 또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날 텐데 인간관계를 새로 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곳으로 옮겨질 텐데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이러한 생각이 고립감을 악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쓸쓸해요."
수도권에 살다가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해 경남 진주에서 고독한 독립생활을 하는 최현아씨(33·가명)는 기업과 지자체가 결국 누군가는 타지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립감 문제 해소에 적극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공기관 근무자에게 이러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니 정부나 지자체에서 당연히 역할을 해야 한다"며 "특히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기업과 지자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없다는 불안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원인이 된다. 2022년 '청년의 사회적 고립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를 수행한 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도 '내가 계약이 끝나고 나서 혹은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 또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아예 관계에 벽을 치고 지내면서 서서히 고립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다가 너무 외로워지고 고립되면 더 이상 사회 참여를 하지 못하고 은둔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나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위험 정도를 확인해보세요'</i>
https://www.asiae.co.kr/list/project/202405031429005132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