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인턴
인천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뇌 손상을 입고 보행장애를 입게 된 아이의 부모가 병원 측에 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법원 측은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며 소송 비용도 모두 원고들이 부담할 것을 명령했다.
15일 인천지법 민사14부는 A군과 그의 부모가 인천 모 의료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소송 비용도 원고가 모두 부담하도록 명령했다.
앞서 지난 2017년 6월, 당시 2살이었던 A군은 열이 나고 오한 증세를 보여 부모와 함께 인천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A군의 부모는 "아들이 이틀 전부터 열이 나서 다른 병원에 갔더니 수족구병 진단이 나와 약을 먹였다"며 "평소에는 아픈 적이 없는데, 어제저녁에는 자다가 깜짝 놀라면서 20분마다 깼다"고 의료진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이에 의료진은 시럽 형태로 된 진정제를 A군에게 먹였으나, A군은 절반가량만 삼키고 나머지는 뱉어냈고 20분 뒤에는 구토해서 간호사가 콧줄로 산소를 공급했다. 하지만 산소 공급량을 늘렸음에도 A군의 산소포화도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결국 의료진은 기도를 열기 위해 기관삽관을 시도했다.
기관삽관은 신축성 있는 플라스틱 관을 기관 내에 삽입하는 시술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전문의가 지름 5㎜짜리 튜브를 A군의 기도에 넣으려고 30분 넘게 번갈아 가며 시도했으나 계속 실패했고, A군의 산소포화도는 계속해서 낮아지다가 결국 심정지 상태가 됐다. 급하게 심장마사지를 한 의료진은 A군의 맥박이 다시 돌아오자 다른 전공의가 기관삽관을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A군은 4분 뒤 재차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두 번째 심장마사지 후 맥박이 다시 돌아왔으나 뇌염과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으로 보행장애와 인지장애를 앓게 됐다.
바이러스 검사 결과, A군에게서는 수족구병을 일으키는 '엔테로바이러스 71형'이 검출됐다. 수족구병은 여름과 가을철에 흔히 발생하며, 입 안의 물집과 궤양, 손과 발의 수포성 발진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대개는 가벼운 질환으로 미열이 있거나, 열이 없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뇌간뇌척수염, 신경인성 폐부종, 폐출혈, 쇼크 등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A군의 부모는 2020년 아들과 함께 병원 측에 치료비와 위자료 등 총 3억9000만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군의 부모는 "당시 의료진이 호흡곤란과 저산소증에 빠진 아들을 방치해 악화시켰다"며 "기관 삽관도 지연해 심정지와 뇌 손상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A군의 상태를 소홀하게 관찰하거나 기관 삽관 등 처치를 지연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피고 병원 간호일지에 따르면 의료진은 지속해서 A군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며 상태를 관찰했다. 간호사가 상주하며 계속 산소 공급이나 흡인 치료 등을 했고, 이후 의사들도 가까이서 지켜보며 주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의사 3명이 돌아가면서 시도한 끝에 38분 만에 결국 기관 삽관을 마쳤다"며 "통상 숙련된 의사의 기관삽관은 한 번에 성공하면 10분 만에 할 수 있지만, A군이 24개월 미만의 영아라 성인과 비교하면 기도가 작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관삽관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점만으로는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뇌 손상이 발생한 사실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