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태평양 도서 지역의 원주민 지도자들이 고래 보호를 위해 고래에 사람과 같은 권리를 부여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태평양 남부 뉴질랜드 원주민 부족인 마오리의 왕, 타히티와 쿡제도 등 태평양 동부 폴리네시아 섬들의 원주민 지도자 15명이 지난주 고래의 법인격(Legal personhood·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선언문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동의 자유, 언어를 포함한 문화적 표현, 건강한 환경, 건강한 바다, 고래 개체군의 복원"을 비롯해 고래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런 선언이 실효를 거두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원주민들이 이 선언문을 뉴질랜드 등 관련국 정부에 고래 보호 조치를 강화하도록 하는 로비에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정부기구(NGO)인 지구협의회연합(ECA)의 렐레이 렐라울루 회장은 뉴질랜드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이 선언문은 전 세계적인 고래 보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행동에 나서도록 박차를 가할 거라 생각한다"며 "(태평양)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은 고래들의 인도를 받아 현재 고향인 섬으로 갔다. 고래와 매우 강한 영적, 형이상학적 유대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께 제주도는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의 제도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생태법인은 인간 이외의 존재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에는 이미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사례가 여럿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헌법에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2011년 볼리비아는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어머니 대지법'을 제정했다. 2014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산드라'를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했다. 2016년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아트라토 강의 법적 권리를, 2018년 최고법원은 콜롬비아 내 아마존 지역의 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2017년 뉴질랜드는 황거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황거누이 강의 법인격을 부여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160년간 벌인 싸움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