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아시타, 쿄우 요리모 스키니 나레루(明日、今日よりも好きになれる)."
첫 소절 가사만 보고 무슨 노래인지 맞히신 분 계신가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하게 될 거야"라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가사에 경쾌한 멜로디가 특징인 노래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학창시절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며 '기억조작곡'으로 이름을 알린 일본 밴드 '그린(GReeeeN)'의 노래 '키세키(奇跡·기적)'입니다. 그린은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제이팝 열풍을 이끈 주역 중 하나로, MP3에 제이팝 좀 넣어서 듣고 다닌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노래죠. 특히 키세키는 일본 가수들도 라디오 등에 나와서 굉장히 많이 불렀고, 활동하는 우리나라 아이돌이나 유명 가수들이 콘서트장에서 자주 불러주는 노래로 유명합니다.
갑자기 왜 추억의 그룹을 소환하느냐, 바로 지난 19일 그린이 밴드 이름 변경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몸담았던 소속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그린이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밴드 이름으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이 덕분에 원래 얼굴 없는 가수로 유명했던 그린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추억 회상에도 나설 겸, 새 이름으로 시작할 일본 밴드 그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콘서트장에서 라이브 중인 그린의 모습.(사진출처=그린 X 계정)
19일 그린은 기존 소속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새로 회사를 설립해 새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바뀌는 이름은 '그린 보이즈(GRe4N BOYZ)'인데요.
멤버 쿠니는 "한동안 소식이 뜸해 팬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스텝을 준비하기 위해 이제야 보고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의 그룹명도 독특한 알파벳을 사용했는데, 이번의 이름도 독특하죠. 원래 그룹명인 'GReeeeN'은 멤버 수 4명을 따서 만든 것인데요, 로고는 마치 웃는 입처럼 돼 있죠. 이것은 멤버들이 모두 치과대학에서 만나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웃는 얼굴이 될 때 보이는 치열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멤버 나비는 "이전에는 미숙, 미완성을 의미하는 이름이었다면 이번 이름은 신인 시절 4명이 만났을 때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계속해서 즐겁게 음악을 하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멤버 소는 "대학에서 만나 즐겁게 음악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기분을 재차 마음 깊이 새겨 새롭게 걸어가고 싶다"고 밝혔는데요.
일본 밴드 '그린'의 로고.(사진출처=그린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 리더 히데는 "미완성과 미지의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도 계속 노래하겠다.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소속사를 나와서도 서로 완전체로 활동한다는 점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치과대학에서 만나 2002년 취미로 밴드를 결성하게 되죠. 무엇보다 치대를 나온 이후 치과의사 업무도 병행해야 하므로 2007년 데뷔 후 '아이우타', '키세키'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로도 불렸습니다. 치과의사라는 겸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언론 인터뷰도 잘 응하지 않았다는데요.
팬들은 멤버들이 데뷔 당시 학생이었으니,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얼굴을 공개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들이 전원 국가고시에 합격한 2010년에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콘서트에서도 보통 멤버들이 직접 오르기보다는 라이브와 여기에 맞는 영상을 틀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네요.
2017년에는 그린의 결성과 노래 키세키가 나오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 '기적:그날의 소비토'라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지만 공부하라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리더 히데와 형의 이야기인데요. 스다 마사키가 주연을 맡아 일본에서 크게 흥행하기도 했습니다.
NHK 홍백가합전에 증강현실(AR)로 등장한 그린.(사진출처=X)
그러다가 드디어 2020년 홍백가합전에서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연출로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무대에서 4명의 얼굴이나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났는데, 이 때문에 진짜 본인들인지, 미리 준비한 녹화인지, 본인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을 내세운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가기도 했는데요. NHK 담당자는 "제작에 관련된 것이니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여하튼 진짜 얼굴은 아직 방송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셈이죠.
이들이 후쿠시마현 치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리더 히데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피폭된 시신의 신원확인을 하는 일에 의사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팬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일단 소속사와 계약이 해지됐는데 그룹명을 그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아니면 개명을 해서라도 소속사와의 계약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것 아니냐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응원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한때 음악으로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준 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는 이야기도 많았는데요. 새 이름으로 발표할 차기 곡들에 대한 기대도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