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석기자
한국은 삼원계 양극재 수출 1위지만 글로벌 공급망 내 위상은 7위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이익을 내야 세액공제를 받는 현행 제도를 투자세액공제를 현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도록 바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한국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허브 구축 가능성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해외 주요국이 배터리 공급망 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는 만큼 한국이 중국 역할을 대신할 기회가 왔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향후 중국 대신 글로벌 공급망 허브가 될 잠재력을 갖췄다고 했다. 우선 배터리 핵심소재 양극재 글로벌 시장에서 에코프로(7%), LG화학(5%), 엘앤에프(4%) 등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에 리튬을 더해 만드는 삼원계 양극재에서는 한국이 최대 수출국이다. 수출 비중이 76.8%에 달한다.
중국이 상당 부분 공급하는 주요 광물이 중국 밖에 묻혀있는 경우도 많다. 코발트는 콩고, 니켈은 인도네시아, 리튬은 호주 매장 비중이 가장 크다.
문제는 수출 실적에 비해 공급망 내 '위상'이 낮다는 것이다. SGI는 공급망 내 중계 역할 지표 '매개중심성'을 계산해 국가별 공급망 위상을 비교분석했다.
삼원계 양극재 수출 1위 한국의 매개중심성은 7위에 불과했다. 중국은 수출 2위지만 매개중심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인산철 양극재 수출액, 매개중심성은 모두 중국이 1위였다. 가장 많이 쓰는 리튬이온전지 한국 수출액은 3위지만 매개중심성이 21위에 머물렀다.
김경훈 SGI 연구위원은 "한국은 수출이 소수 국가에 쏠려 있어 다양한 국가와 거래하는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보다 공급망 내 위상이 낮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SGI는 한국 배터리 공급망 내 위상을 높이려면 국가 차원에서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리튬 등 핵심광물 5대 품목 공급망 구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국내 생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 세계 시장 점유율은 24%인데 한국 생산 점유율은 1%대다. 전기차 국내 생산 생태계가 갖춰져야 배터리도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광물을 수입 다변화하는 전략도 필수다. 예를 들어 흑연은 국내에서 인조흑연을 만들 수 있다.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은 중국 외 다른 나라로 수입을 다변화하고 수송비용을 줄여야 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인조흑연과 이를 활용한 음극재, 수산화리튬 등의 국내투자 및 생산이 느는 중"이라며 "한국이 이들 품목 공급기지가 되도록 적극적인 투자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투자세액공제 직접환급제 도입, 국내 마더팩토리 구축, 해외광물개발 민관협력체 설립, 기업기술 개발 촉진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직접환급제는 국내 투자 촉진 방안이다. 기업이 투자금에 대한 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은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 관련 시설투자 기업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지만 영업이익을 내야만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이익이 발생하는 배터리 산업 특성상 세액공제를 받기 어렵다. 기업 투자 촉진 효과도 낮다.
각국이 자국 내 배터리 생산을 요구하는 만큼 해외 공장을 짓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만 배터리 셀 생산은 연구개발(R&D), 제품 설계 등 핵심 기능을 국내 마더팩터리에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리튬 기반 이차전지 시장 성장성이 높은 만큼 광산을 확보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광산개발은 해외 네트워크, 대규모 자본 등 장기 계획이 필요해 개별 기업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해외광물 자원 개발을 위한 민관 협력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기술 발전 방향에 따라 공급망이 바뀔 수 있어 국내 기업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전고체 배터리가 미래 배터리로 논의되고 있고, 가격이 싸고 안정성이 개선된 인산철 배터리 채택 늘고 있다"며 "관련 기술 발전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