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vs '진짜'…쿠팡 '블랙 리스트' 진실게임

사실여부 따라 치열한 법적공방 예고
정치권 확대 가능성에 우려 목소리도

쿠팡이 최근 자사 취업 금지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진실 게임'으로 번졌다. 노동계 일각에서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기피 인물의 재취업을 막기 위한 '취업 금지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쿠팡은 "조작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다. 관건은 공개된 블랙리스트의 진위 여부인데, 고용노동부가 관련한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어서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민변 소속 변호사·노조 "쿠팡, 불법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번 논란은 지난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민변) 소속인 권영국 변호사와 쿠팡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그만둔 일부 노동자의 재취업을 막기 위한 '블랙리스트' 만들었다며 엑셀 파일로 된 문건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문건에는 취업 제한자들의 이름과 근무지, 생년월일 등의 개인정보와 함께 퇴사일, 사유, 노조 직함 등이 적혀있다. 또 재취업 제한 사유 항목에는 폭언·모욕·욕설, 도난·폭행 사건, 스토킹, 정당한 업무 지시 불이행 등 사유는 물론 학업과 이직, 육아·가족 돌봄, 일과 삶 균형 등 퇴사 이유가 적시됐다. 문건을 작성하고 등록한 기간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로 돼 있다.

대책위는 "쿠팡이 해당 문건을 관리하며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재취업 기회를 일정 기간 혹은 영구히 배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현행법상 기본권 침해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문건에는 쿠팡이 잡입 취재 등을 막기 위해 언론인의 신상정보까지 포함된데다, 쿠팡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해온 현역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이름도 발견되면서 논란이 확산 중이다.

쿠팡 "취업 명단 관리, 정당한 경영활동…일부 조작·가공"

쿠팡은 즉각 반박했다. 직원들에 대한 인사평가를 작성·관리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경영 활동인 만큼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이번에 공개된 명단은 불법 유출한데다. 일부는 조작·가공됐다고 쿠팡은 이번에 공개된 리스트가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며, 그나마도 조작·가공 된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쿠팡은 입장문을 통해 "CFS 인사평가 자료에는 '대구센터' 등의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권 변호사 등은 암호명 '대구센터' 등을 운운하며 CFS가 비밀기호를 활용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허위 주장했다"며 "심지어 CFS 인사평가 자료에는 없는 '노조 직함' 항목을 임의로 추가해 조작한 자료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CFS가 노조활동을 이유로 취업을 방해했다고 허위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 인사평가는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수십만 직원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원 A씨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민노총 노조간부 B씨와 공모해 물류센터 운영 설비 관련 자료를 포함한 수십종의 회사의 기술, 영업기밀 자료를 유출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민노총 간부 B씨는 과거에도 회사 기밀을 탈취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문건에 적시된 것에 대해선 "해당 의원은 2022년 7월6일 9시간의 물류센터 일용근로를 신청하고, 실제 약 4시간 근로 후 무단 퇴근했다"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동일한 인사평가 기준에 따라 ‘근무지 무단 이탈’로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문건을 공개한 권 변호사와 불법으로 자료를 탈취해 유출한 정황이 있는 민노총 간부 B씨와 직원 A씨에 대해 형사 고소했다.

쿠팡대책위 대표 권영국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법적 대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핵심 쟁점 '블랙리스트'…법적

이번 사태의 법적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기업이 취업을 제한하는 리스트 작성이 법 위반이냐는 것이다. 권 변호사와 대책위는 쿠팡이 리스트를 작성한 것 자체가 기본권 침해와 근기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쿠팡은 "정당한 경영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리스트 작성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근기법 40조는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하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쿠팡의 경우 자사의 사업장에서 문제를 일으킨 근로자의 다른 회사 취업을 막기위한 조치가 아닌만큼 해당 조항을 위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해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40조 취업방해 금지 조항은 취업방해를 목적으로 타사에 명단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지, 자사 채용 참고 목적으로 내부적으로 명단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채용은 사용자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선 사례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2022년 1월 직원 리스트 작성과 관련 혐의를 인정, 마켓컬리를 기소의견으로 서울동부지검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월 이를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택배노조가 지난 2018년 CJ대한통운을 유사한 사안으로 고발했지만 역시 무혐의 처분됐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기자간담회서 “리스트를 작성하지 말라는 것은 물류센터 안전·위생·품질·방역관리를 하지 말란 이야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제 사원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정상적이 인사제도이지, 문제가 없는 일반인을 명단에 올려 불이익을 주는 '리스트'가 아니란 것이며, 이를 검찰도 인정한 셈이다.

다만 블랙리스트의 리스트의 진위 여부도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쿠팡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회사의 기밀 유출 및 조작·가공'에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해당 문건이 조작·가공되지 않았을 경우 쿠팡에 취업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기자 등 외부인 명단은 개인정보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사실 조사 나선 고용부…"총선 앞두고 정치적 논란 우려"도

이번 사태는 고용부가 사실 조사에 나서면서 의혹이 규명될지 주목된다. 사실 조사는 언론의 의혹 제기 등과 관련해 제반 사실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법 위반 여부 수사와는 다른 고용부의 일상 업무다.

다만 고용부의 사실 조사가 특별근로감독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책위도 특별감독을 요청하고 있다. 그간 고용부는 사회적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 특별감독에 나선 사례가 많다. 특별감독은 고용부의 감독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조사로, 문제가 발견되면 곧바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목전에 둔 만큼 정치권의 쟁점이 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쿠팡의 조치 직원 보호 차원에서 이뤄진 정상적인 기업 인사제도로 보인다"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총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유통경제부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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