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부 유튜버 장난전화에 속은 소설가, 러 정부 '테러리스트 지정'

조지아 출신 추리 소설가 보리스 아쿠닌
유튜버들에 속아 우크라이나 지지 표명
테러 혐의 조사…"그래도 새벽은 온다"

친(親)정부 유튜버들의 장난 전화에 속아 우크라이나 지지를 표명한 러시아의 인기 소설가가 테러리스트로 지정되며 당국에 조사받게 됐다.

러시아 정부가 18일(현지시간) ‘보리스 아쿠닌’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추리 소설가 그리고리 치카르티쉬빌리를 ‘극단주의자 및 테러리스트’ 등록부에 추가했다고 이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금융감독청인 로스핀모니터링도 그를 ‘극단주의자 및 테러리스트’ 명단에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정부 유튜버에 속아 '우크라이나 지지' 표명

‘보리스 아쿠닌’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추리 소설가 그리고리 치카르티쉬빌리.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군에 대한 허위 정보를 유출하는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제정됐다. 아쿠닌은 이 법에 따라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고 러시아군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한 혐의로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가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것은 러시아 친정부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가 걸어온 장난 전화 때문이었다. 이들은 각국 지도자들에게 다른 사람인 척 가장하고 국제 정세에 관해 묻는 것으로 유명한데, 아쿠닌에게는 우크라이나 인사인 척하며 전화를 걸었다.

반체제 인사로 널리 알려진 아쿠닌은 해당 통화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부금을 모은 사실을 털어놓는 등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이후 유튜버들에 의해 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지난주 러시아 주요 출판사인 AST는 아쿠닌의 책 판매를 중단했다.

"테러리스트들이 나를 테러리스트라고 선언했다"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아쿠닌은 “테러리스트들이 나를 테러리스트라고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또 “출판 금지 조치와 일부 작가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구소련 시절 이후 러시아에서는 어떤 책을 금지한 적도 없고, 작가들이 테러 혐의로 기소된 적도 없다. 이건 나쁜 꿈이 아니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러시아에 있다면 조심하고 길을 잃지 말라. 외국에 있다면 돌아오지 말라. 밤은 갈수록 더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새벽은 온다"고 밝혔다.

악명 높은 '보반과 렉서스'…마크롱·메르켈도 속아

보반과 렉서스에 속은 인사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아프리카 지도자를 사칭한 이들의 전화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피로를 느낀다"고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이 밖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등이 속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들이 러시아 보안당국의 협조로 각국 총리·대통령의 전화번호 등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은 앞서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합법적이다. 애국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느냐”고 말했다.

이슈2팀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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