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주기자
<i>- 국회 국민동의청원서</i>
국회 정무위원회는 내달 공매도 제도 개선을 논의할 전망이다.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과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 제한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이 5만명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국민동의청원에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해당 상임위에 안건이 회부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회 논의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동의청원 내용 중 전산시스템 구축은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이고,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어서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공매도 전면 재개를 논의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 탓이다. 공매도 금지 종목에 대한 가격 조정 기능이 사라지면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세력에 속수무책이란 지적이다.
공매도 제도 개선 관련 국민동의청원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현 증권거래 시스템을 무차입 공매도가 불가능하도록 바꿔달라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기관과 외국인의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을 제한해달라는 요구다.
전산시스템 도입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0년 자본시장법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이다. 당시 공매도 거래 전산시스템 도입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정무위 의원들은 '실익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무차입 공매도를 식별하는 전산시스템을 완벽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위의 판단이었고, 소위 의원들은 비용 대비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올해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말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 원장은 지난 17일 공매도 전산화 필요성에 대해 질문을 받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거래소 회원사인 증권사들이 (공매도) 주문을 넣는 외국계 투자은행(IB) 등 고객들의 주식 대차 현황을 파악한 후 주문을 실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것이 어떻게 전산화 형태로 구현될지는 당국에서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공매도 주문자가 증권사에 대차잔고를 보고하면 이를 자사 시스템이나 예탁원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각 증권사가 예탁원 e세이프에 대차거래 확정 내역을 제출하지만, 예탁원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의무가 아니라 일부 증권사들은 자사 시스템을 활용하고, 외국계는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도 "대차잔고는 거래 당사자들이 보고해야 현황 파악을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시스템상 애초에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고, 사적 계약인 대차거래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국민동의청원의 또 다른 내용은 차입 공매도 상환기간이다. 외국인과 기관은 상환기간에 제한이 없다. 이유가 있다. 예탁원 관계자는 "국제 대차거래 표준약관에 따르면 대여자와 거래자가 상호 협의해 만기를 결정하도록 한다"며 "오픈텀(만기 제한이 없는 것)으로 체결하는 해외 표준에 맞춰 국내에서도 똑같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2021년 제도를 개선했다. 개인 투자자의 차입 공매도 상환기한은 원래 60일이었지만, 지금은 90일로 늘어났다. 기존에는 연장이 불가능했지만, 이제 횟수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다. 또 개인 투자자의 담보비율은 원래 최소 140%였으나, 2021년 제도 개선 후 120%로 낮아졌다. 외국인과 기관의 경우 주식대차는 105%, 대권대차는 102%이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인·기관과 비교할 때 동등한 조건이냐고 따진다면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금융당국이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매도 제도를 전면 재개하는 게 시장에 유리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월 라덕연게이트, 6월 무더기 하한가 사태, 10월 영풍제지·대양금속 하한가 등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 탓이다. 최근 주가조작의 두드러진 특징이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서서히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가조작이 발생한 종목들의 공통점을 보면 공매도 금지 종목이다"라며 "공매도가 가능한 종목은 가격 조정에 따라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가 가능했다면 시장에서 가격 조정 기능이 발현됐을 것이란 의미다.
현재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급락하자 금융위는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이후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면서 공매도 재개가 공론화됐지만 개인 투자자의 반발이 커서 제한적으로 공매도를 운용 중이다.
왕수봉 아주대학교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는 변동성을 안정화시키고 가격 발견에 기여한다는 내용의 논문이 있다"며 "오히려 공매도를 제한할 경우 가격 효율성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가 나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변동성이 극심한 상황에서 공매도 재개가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종목별 공매도 대금과 주가 간 유의미한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라며 "시장 전체를 기준으로 공매도 비율과 주가 성과(등락률) 간 유의미한 관계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