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엑스선(X-ray) 레이저(선형 방사광 가속기)를 완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화학 반응 순간 일어나는 원자의 움직임까지 포착해 이미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관련 연구에 혁신을 가져올 전망이다.
미 스탠퍼드대 SLAC 국립가속기연구소는 지난 12일 11억달러를 들여 10여년간 진행해 오던 방사광 가속기 LCLS-I(Linac Coherent Light Source)의 성능 개량 사업을 마치고 첫 번째 빔 생산에 성공했다.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개선된 LCLS-II는 X선 초당 펄스 수가 120개에서 무려 8000배 이상인 100만개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초당 10만 프레임의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레이저의 밝기도 평균 1만배 이상 밝아졌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역대 최고의 선명도로 분자 운동을 촬영할 수 있고, 다른 장비로는 불가능했던 희귀한 분자 현상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화학 반응 도중 원자 주위를 맴도는 전자를 포함해 엄청나게 빠르게 일어나는 물질들의 운동을 이미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광합성의 비밀을 밝혀내거나 컴퓨팅 시스템을 위한 새로운 전자 소자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업그레이드되기 전인 LCLS-I도 2009년 설치됐을 당시 엄청난 성능을 자랑했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X선을 레이저 속도로 쏴 원자를 연구할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였다. 약 3km의 길이의 구리선을 통해 전자를 가속시킨 후 자기장을 이용해 교란시켜 X선을 방출하도록 하는 원리다. 고에너지의 경질(투과력이 강한 단파장) X선과 저에너지의 연질 X선을 동시에 생산해낼 수 있다.
연구소 측은 이번 성능 개량을 통해 가속기 일부 구간의 구리선을 2켈빈(영하 271.5도 안팎)의 극저온 상태에서 전기 저항 '제로(0)' 상태, 즉 초전도 니오븀(Niobium) 전선으로 교체했다. 이로 인해 X선 펄스를 훨씬 더 빠르게 생산해 낼 수 있게 됐으며, 나머지 기존의 구리선 부분은 연질(투과력이 약한 장파장) X선만 생산하게 된다. 연구소 측은 업그레이드를 2020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 여러 이유로 이번에 마무리짓게 됐다.
우리나라도 1994년부터 3~4세대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완공해 활용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발생하는 빛을 이용해 원자-분자 단위의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어 기초과학, 의학, 응용과학 등에 활용한다. 방사광가속기의 빛은 태양보다 훨씬 더 밝아 원자, 분자 수준의 관찰이 가능해 '초고성능 거대 현미경'으로 부른다. 현재 충북 오창에 1조원을 들여 4세대 다목적방사광가속기를 구축 중이다. 피코미터급으로 4GeV(40억 전자볼트)로 전자를 가속해 태양보다 약 1조배 밝은 광선을 생산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