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PF시장]②PF 대출 만기 연장에 연체율 '착시'…드러나지 않은 부실 많아

부동산금융 편법 만기 연장으로 연체율 축소 반영
부동산 펀드와 리츠는 금융회사 건전성 분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미래로 미뤄놓은 부실폭탄 한꺼번에 터질 수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체율이나 고정이하자산(부실채권, NPL) 비율 등 겉으로 드러난 건전성 수치는 PF 부실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PF 대출 만기 연장에 성공하면 부실 가능성이 크거나 이미 손실 상태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도 연체나 부실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실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미 부실 상태인 PF 대출이 상당히 많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체로 잡히지 않는 해외 부동산 펀드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손실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연체로 잡히지 않는 ‘PF 대출 만기 연장’

신용평가사 등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 익스포저 중 올해 6월 말 현재 3개월 이상 연체한 부동산PF NPL은 1조2000억원 규모다. 전체 증권사 PF 여신이 27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치로 나타난 부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NPL비율상으로는 PF의 건전성이 크게 저하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회사의 PF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우려할 정도로 연체율이 높지 않고 최근 들어 상승 추세도 완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PF업계는 낮은 연체율을 PF 대출 만기 연장에 따른 착시효과로 보고 있다. 한 지방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던 A시행사는 최근 1000억원 내외의 브리지론 만기를 연장했다. 브리지론은 개발사업 인·허가를 받기 전에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금융회사에서 빌린 자금이다. 브리지론을 빌려준 대주단에는 증권사와 보험사, 캐피탈사 등이 포함돼 있다.

만기를 연장 과정에서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이 협의해 이자지급 조건을 '이자후취'로 바꿨다. 원래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 내야 하는 이자를 만기에 원리금과 함께 상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변경해 준 것이다. 시행사가 이자를 지급할 자금이 바닥난 상태여서 대출 연장 조건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기 연장으로 금융회사들은 이 브리지론을 연체로 반영하지 않았다. 대주단 관계자는 "시행사가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연체로 반영해야 하지만, 만기를 연장해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행사가 정기적으로 내야 할 이자비용까지 대출 규모를 늘려 만기를 연장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회사들은 PF 대출액이 조금 늘어날 뿐 연체나 부실로 잡거나 충당금을 쌓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연체나 부실여신에 포함되지 않은 PF 대출 중에서도 잠재부실이 상당액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개발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브리지론 PF 여신의 경우 만기가 연장되더라도 실제로는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만기 도래한 브리지론의 대부분이 만기를 연장했다"면서 "기존 PF 대출의 만기 연장으로 연체나 손실 인식이 계속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리 인상 전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입한 시행사들이 많은데 공사비와 금리 상승으로 개발사업의 사업성이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면서 "PF사업 진행 속도가 계속 느려져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대출을 계속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분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부동산 펀드와 리츠도 문제다. 펀드와 리츠가 부실자산에서 빠져 있어 금융회사의 부동산 부실이 실질보다 낮게 나온다. NICE신용평가는 설정액 규모가 10억원 이상인 펀드나 리츠 중 20% 이상 손실이 발생한 물량을 포함하면 증권사의 잠재부실 PF 익스포저는 1조2000억원에서 약 6조원으로 5배로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대체투자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상당 부분 과소 평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만기 물량 몰리면 부실폭탄 한꺼번에 터질 수도

금융회사들이 만기 연장으로 부동산 관련 부실을 미래로 이연시키면서 9월 위기설과 같은 위기 경보가 반복적으로 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금융 관련 대규모 익스포저의 만기가 주기적으로 계속 돌아오기 때문이다. 만기 물량이 몰린 시점에 고금리나 신용경색 등으로 대출 연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실 폭탄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잠재부실 익스포저는 2026년까지 매년 평균 1조원 이상의 만기가 도래한다. 만기 도래한 익스포저가 1년 내외의 만기로 계속 연장되기 때문에 연도별 PF 및 대출 만기액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시장금리 상승과 부실에 대한 우려로 PF 대출 환경은 악화하고 있다. 선순위 PF 대출 금리는 3%대 후반~4%대이던 것이 최근에는 9~10%까지 상승했다. 중순위 대출 금리는 15~17%까지 올랐고, 가장 위험이 큰 후순위에 투자하려는 금융회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브리지론을 본PF로 넘기려 해도 후순위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본PF 매칭에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리 부담으로 PF에 투자하려는 시장 유동성도 말라가고 있다. 은행은 PF 대출이나 보증 한도를 극도로 제한하고 본PF 일부에만 참여하고 있다. 보험사와 캐피탈사 등 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MG새마을금고,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도 PF 한도를 줄이고 PF대출에 대한 LTV비율(부동산 평가액 대비 대출 비율)을 하향 조정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 개발사업의 사업성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 이상 PF 만기 연장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만기 물량이 몰린 시점에 차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회사 부실이 한꺼번에 증가해 거시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증권자본시장부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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