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2004년 4월2일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입으로만 용서를 구한 게 아니다. 노인단체를 찾아가 직접 절을 하고 거듭 용서를 구했다.
집권 여당의 당 대표 격인 인물이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초대형 악재를 만들어낸 상황. 총선 참패를 걱정하던 한나라당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정동영 의장의 한마디가 총선 판세를 바꿔버린 사건, 지금도 유명한 2004년 노인폄하 논란이다.
이른바 정동영 노인폄하 사건을 살펴보려면 2004년 당시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여당은 분열했다.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열린우리당이 실질적인 집권 여당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가 민심의 거센 역풍을 경험했다. 제17대 총선을 눈앞에 둔 상황, 열린우리당 바람이 전국을 강타했다. 대구와 부산도 한나라당이 고전할 정도로 민심은 요동쳤다.
그런 상황에서 터진 게 바로 정동영 노인폄하 사건이다. 사건의 시작은 2004년 3월26일 정동영 의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 편하게 한 발언이었지만, 이 사건은 일파만파 번졌다. 정동영 의장은 어떤 얘기를 한 것일까.
정동영 의장은 자기 발언의 취지가 60~70대 투표 불참이 아니라 20~30대 정치 참여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전했다.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은 그 자체로 논란을 증폭시킬 내용이었다.
정동영 의장 발언은 일주일가량 지난 뒤 다수 언론에 노출됐다. 한나라당은 노인폄하 사건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노인폄하 사건 이전만 해도 여론조사 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200석 획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민심은 요동쳤고, 200석은커녕 과반의석도 만만치 않다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17대 총선 막판 기세를 올렸고, 열리우리당은 특단의 대책을 고심했다.
결국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2004년 4월12일 정동영 의장은 당 의장직과 공동선대위원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당의 컨트럴타워가 무너진 셈이다.
한나라당은 흐름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나라가 위험으로 치달을 때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면서 “저희 한나라당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고 유권자 지지를 호소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너무 독주한 것도 부담이었다. 유권자 견제 심리가 되살아나는 상황에서 정동영 의장 발언 논란은 불씨를 더욱 살리는 자극제가 됐다.
2004년 4월15일 제17대 총선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으며 과반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으며 집권여당을 견제할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는 하나의 사건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선거판도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설화(舌禍)를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폄하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동영 의장의 그때 그 사건도 소환됐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정치인 정동영을 그리고 민주당을 괴롭히는 악재로써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