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포커스]가계부채 급증, 금리 만능열쇠 아니라는 한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 최우선
자금 흐름 위한 미시적 대응

"가계 부채 관련 지금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 자금흐름의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7월1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주춤하던 가계부채가 최근 증가세로 다시 돌아서면서 경고등이 커지는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발언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월, 4월, 5월에 이어 4번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6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에 달하면서 가계부채 급증세에 대한 우려가 부쩍 커졌기 때문이다.

금통위 최대 화두 역시 가계부채였다. 금통위 직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가계 부채에 대해 "정교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우리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조정하려 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크게 생길 수 있다"며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 역전세난, 새마을금고 사태 등이 예"라고 운을 뗐다.

이어 가계부채 문제로 인한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지금 마이크로 대응을 하고 이것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뿐만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 총재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이 필요하겠지만 부동산 연착륙과 새마을금고 사태 여진이 남아있는 지금으로서는 아직 금리로 대응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표면적으로 이 총재가 가계부채 급증 시 금리대응 가능성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현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는 부동산 연착륙에 실려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GDP 대비 주요국 최고 수준이어서 통화정책에도 중요한 고려 요소"라면서도 "다만 현재 시점에서는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힘든 만큼 가계부채가 이번 금통위의 핵심 변수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사상 최대'…향후 통화정책 변수로

사실상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론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가계부채는 향후 통화정책의 최대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2021년 8월부터 지속된 긴축 기조와 부동산 경기 부진으로 줄어들던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우려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9000억원 증가한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증가 폭도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9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감소세였지만 4월 2조3000억원 증가하면서 6월까지 석 달 연속 늘었다.

문제는 이 같은 증가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 등으로 주택구입과 전세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7조원이나 늘었다. 증가폭은 2020년 2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였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도 가계부채 증가세에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가계신용 누증이 우리 경제의 리스크 요인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가계대출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 총재가 정부와의 코디네이션 측면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입장 정리에 나섰지만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맞서고 있다.

실제 2021년 8월부터 이어진 금리인상 여파로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빚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3.6%로 조사 대상인 전 세계 주요 17개국 중 호주(14.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호주와 한국에 이어 캐나다(13.3%), 네덜란드(13.1%), 노르웨이(12.8%), 덴마크(12.6%), 스웨덴(12.2%) 등이 지난해 기준 DSR이 10%가 넘었다. BIS는 국민계정을 활용해 산출한 17개국의 DSR을 분기별로 발표한다. DSR은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DSR이 높으면 소득에 비해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가계 빚 증가 속도 또한 주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빨랐다. 한국의 지난해 DSR은 전년인 2021년(12.8%)과 비교하면 0.8%포인트 상승해 13.5%에서 14.7%로 1.2%포인트 오른 호주 다음이었다. 캐나다 0.7%포인트(12.6→13.3%), 미국 0.4%포인트(7.2→7.6%), 핀란드 0.3%포인트(7.2→7.5%), 일본 0.1%포인트(7.4→7.5%) 등이 1년 새 DSR이 올라 원리금 상환 부담 커진 반면 조사 대상 17개국 중 9개국은 지난해 DSR이 하락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다 채무로 인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민간소비를 위축시킨다"면서 "가계부채 누증이 중장기적으로 성장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정부의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지난 4월 'BOK 이슈노트-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에서 "한국과 같이 가계신용비율이 GDP 대비 100%를 이미 초과한 상황에서는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욱 클 가능성이 있다"며 "가계신용비율이 80%에 근접할 수 있도록 가계부채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게 한국은행으로서는 부담이겠지만 서울·아파트 중심으로 부동산이 꿈틀대는 것이지 상업용 부동산 등 상황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며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 차이 등으로 힘들어지면서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경제금융부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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