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원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출범 당시 시대정신에 맞는 단체였겠지만 이젠 시대가 많이 흘렀고 청년들의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저희 목표는 청년들이 관심 있는 이슈와 관련된 입법 제안을 하고, 법안을 통과시켜서 실제 청년과 국민의 삶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지난 3월 일명 'MZ(밀레니얼+Z세대) 변호사 단체'로 불리며 출범한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의 초대 상임대표인 송지은 변호사(변호사시험 3회)는 새변의 출범 배경과 목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민변 등의 변호사 단체가 정치범 변호 활동, 인권운동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면, 새변은 전세사기 방지, 베이비시터 검증과 같은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공익적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새변은 10명의 M세대 변호사들이 모여 시작됐다. 송 대표는 "사기업들은 로펌의 입법 자문을 받을 수 있지만 공익적 부문에선 입법 자문을 받거나 입법 제안을 하는 단체가 없다"며 "이 문제에 공감하신 분들과 함께 새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올해 3월 출범했고, 벌써 200명 안팎의 변호사들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
새변은 정치적 이슈와는 선을 긋고 오로지 청년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에만 집중한다. 송 대표는 "많은 정책과 입법안이 나오지만 20·30대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결혼, 출산, 육아, 거주 이슈에 있어 세밀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전세사기 방지 방법 등 실무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저희가 필드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7~10년 차 변호사인 만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변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갖고 추진 중인 '베이비시터 신원보증 의무화'도 청년들의 삶과 맞닿아있지만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은 낮은 문제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맞벌이 부부는 매달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업소개소를 통하더라도 시터의 아동학대 전력이나 유흥주점 근무 경력 등을 확인하기 힘들다. 새변은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시터의 검증을 강화하고 결격사유가 있으면 중개 알선을 못 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새변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의원과 접촉하며 입법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변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한 정당에서 연락이 와 "우리 당하고만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바로 거절했다. 송 대표는 "새변은 청년 변호사들이 공익적으로 활동하려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며 "정치색이 정해지면 변호사들이 참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치 노선을 정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합리성과 유동성을 중요시하는 MZ세대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일명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민주노총과 정부 사이에서 탈정치를 선언한 것과 유사하다. 송 대표는 "본인 이익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표를 주지 않는 유동적 성향을 가진 것이 MZ세대라고 생각한다"며 "새변도 그런 특성을 반영해 이슈에 따라 보수가 될 수도 있고 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새변은 민변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변은 1988년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억압되던 시기,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출범해 수많은 공익사건을 맡으며 민주화와 인권보호 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최근에는 과도하게 정치 편향적인 모습으로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특히 지난 정권에선 법무부 등 정부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알박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 대표는 "지금 민변의 관심사는 청년층의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민변이 얘기하는 것들이 청년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고 더욱 관심을 안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조계에는 다른 청년 변호사 단체도 많이 있지만 주로 변호사의 권익 수호를 위한 단체였다"며 "하지만 저희는 소비자가 국민과 청년이다. 그래서 청년 변호사들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새변의 이런 활동에 비교적 보수적인 법조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라는 반응이 나온다. 새변이 매달 여는 세미나에도 박일환 전 대법관,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삼성전자 부사장을 지낸 지재완 미국 변호사 등이 흔쾌히 참석을 결정했다. 송 대표는 "청년 변호사들 뿐 아니라 대표 변호사나 시니어 변호사들도 이제 이런 단체가 생길 때가 됐다며 응원해 주신다"고 말했다.
보다 나은 청년들의 삶을 만들고자 하는 송 대표 역시 11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10명의 창립 멤버 중 5명이 여성이고, 이 중 4명이 '워킹맘'이다. 그가 공익적 활동에 뜻을 두고, 베이비시터와 같은 사회적 문제 개선에 나서게 된 것도 아이의 영향이 컸다. 그는 "우리나라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 주변을 보면 아이가 0살인데도 영어 노래를 들려준다. 이런 교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 아이가 바른 방향성과 가치관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먼저 모범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변 출범 이후 주변의 기대가 커진 만큼 성과에 대한 압박도 있다. 새변의 공동대표, 이사들은 본인 시간의 20% 정도를 새변 일에 투자하는데, 현재 기업에 소속된 변호사인 경우엔 반차까지 내며 업무를 보기도 한다. 송 대표는 "상반기에는 운영위원 인력 확충이 가장 핵심이고 올해를 기점으로 봤을 때는 9월 국회에 발의될 수 있는 입법안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저희가 최대한 많은 성과를 내서 더 많은 변호사가 참여하고, 결국에는 국민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단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