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여야가 뚜렷한 진영 대립을 보이는 사안에 맞춰 특별위원회(특위) 및 태스크포스(TF) 등을 잇달아 띄우고 있다. 내년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한편 외연 확장을 위한 이슈 선점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올 3월 김기현 대표가 취임한 이후로 당내 특위·TF가 총 8개 만들어졌다. 전세사기 피해대책과 같은 민생 현안부터 김남국 의원 코인 의혹 이슈까지 범위를 두루 펼쳤다. '여소야대' 상황이라 입법 추진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물리적 한계를 특위를 통해서 보완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대표 체제에서 구성된 첫 특위는 '민생 119'다. 김 대표는 민생 119 출범에 대해 "단순하게 한두 번의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라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특위로 끌어나가겠다(3월 20일)"며 '민생정당'으로의 행보를 부각했다. 생산적인 당쟁은 '민생'이며,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가시적인 성과까지 내겠다는 얘기다.
민생 119는 농어촌민생분과, 지역경제소상공인민생분과, 부동산금융분과와 이 3개 분과에서 나오는 정책들이 법률·제도적으로 지원 가능한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입법정책 민생분과로 구성됐다. 첫 과제로 '섬 지역 생수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으로, 소상공인 에너지 지원책 논의·편의점 담배 광고 관련 규제 개선·청소년 마약중독 대책 간담회 등 실질적인 민생행보에 나섰다. 최근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금융 취약계층을 불법 사금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액 생계비 대출한도를 현행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상향하고, 이자율을 10%대로 인하하는 방안 모색에 나섰다.
이외에도 국민의힘은 전세 사기 피해 대책·우리바다 지키기 검증·김남국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 등을 비롯한 4개의 TF와 시민단체 선진화·노동개혁특별위원회·청년정책네트워크 등의 특위 4개를 가동하면서 이슈 선점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 취임 후 특위·TF 가동에 집중해왔다. 민주당에 따르면 현재 당내에는 총 26개의 특위·TF가 있다.
올 초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정치혁신위원회를 시작으로 초저출생·인구위기대책위, 과학기술혁신특위, 대일굴욕외교대책위 등을 잇달아 출범시켰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전세 사기 피해대책과 관련한 전세사기대책특위를 만들었다.
비상설특위만 20개에 달하다 보니 겹치는 활동도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안일한 경제 인식을 비판하며 경제위기 대응센터(ECC)를 출범했는데, 이미 당에는 김태년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민생경제 위기 대책위원회도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서도 활동이 겹칠 때가 생긴다. 해당 이슈와 관련해서는 앞서 해양수산 특별위에서 규탄한 바 있는데 최근 발족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대책위에서도 대응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국회 차원의 '검증 특위'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 정책조정 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 국민들의 불안감 종식해야 한다"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 및 검증 특위' 설치를 제안했다. 특위 구성 후 국회 청문회를 개최해 시찰단이 가져온 정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농해수위, 환노위 등 상임위를 중심으로 검증 및 특위를 구성하고 대처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같은 특위가 현안 따라 만들어지며 단발성 활동에 그쳐 양당의 '정쟁용', 핵심 지지층 '결집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월부터 민주당 내 특위 및 TF 출범이 잦아졌는데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의혹 진상조사TF(2월 1일)', '김기현 의원의 땅 투기 및 토착·토건 비리 의혹 진상조사 TF(2월 26일)', '정순신 인사 참사 진상조사 TF(3월 7일)' 등이 그 예다.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비판이 쏟아지자 마련된 대일굴욕외교대책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을 규탄하면서 가동된 해양수산특별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된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선 하태경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가 가동됐다. 국고보조금과 국민기부금을 받는 시민단체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발족한 '시민단체 정상화 전담팀(TF)'을 특위로 격상시킨 것.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시민단체가 유족 배상금 일부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면서 전반적 실태를 점검해 보겠다는 게 이유다. 일각에서는 노동 개혁특별위원회에 이어 시민단체의 보조금 운영을 점검하는 TF를 발족시킨 것은 여당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도 현안 따라 특위·TF를 가동시키는 것은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이슈로 표심을 공략하는한편 민생 이슈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파악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양당이 나름대로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민주당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면 , 국민의힘은 2030을 타깃으로 하는 것 같다"며 최근 발족한 시민단체선진화 특위, 노동개혁특위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노조운동과 시민단체 관련 핵심층이 4050기반인데 이를 집중 겨냥한 것은 2030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으로 풀이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