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카카오·매일유업…사옥을 짓지 않는 이유는

회사의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 사옥(社屋). 1966년 조흥은행 본점을 시작으로 삼성본관, 대우센터, 현대 계동사옥, 용산 국제빌딩, LG트윈타워 등 기업들은 줄줄이 사옥을 마련했다. 기업들은 사옥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재산 보전 수단으로도 이용했다.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것처럼 대부분 법인은 ‘내 사옥 마련’을 갈망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사옥을 짓지 않은 곳이 있다. 국내 1위 제과제빵 기업 SPC그룹, 식품기업 매일유업, IT기업 카카오, 건설사 아이에스동서 등이 대표적이다.

SPC그룹 양재 사옥 전경

78년 역사를 지닌 SPC그룹은 사옥이 없다. "사옥 살 돈으로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더 짓겠다"는 허영인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직원들에게 항상 "고품질 빵을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허 회장의 철학은 창업주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과 그의 부인 고 김순일 여사의 품질·검약 정신에서 나왔다. 허 창업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품질 경영을 고수했다. 허 창업주는 "고객은 빵 하나로 평가한다"며 "고객을 만족시키면 이익은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는 "제빵은 손끝에서 남는다"는 말로 자식들에게 정성과 절약 정신을 가르쳤다. 손끝에 정성이 모이면 맛이 더 좋아지고, 손끝에 정성이 모이면 쓸데없는 낭비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자석을 끈에 묶어 줬다고 한다. 빵을 담는 나무 박스를 만들 때는 못이 많이 생긴다. 김 여사는 못을 모아온 만큼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며 절약 정신을 몸에 배게 했다.

SPC그룹은 2012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빌딩을 임차해 사용 중이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주인인 이 빌딩은 지하 6층~지상 20층 1개 동으로 건축면적 1858㎡, 연면적 4만744㎡ 규모다. 이곳에는 계열사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삼립식품 등의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SPC그룹은 국내 30개, 해외 5개의 생산시설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말레이시아에 SPC 조호르바루 할랄전용공장도 짓고 있다. SPC 산하의 연구소는 기초소재, 제품개발, 포장재, 인공지능 등 분야에 총 8개가 있다.

설립한 지 54년 된 식품기업 매일유업도 본사 사옥을 소유한 적이 없다. 지금도 광화문 건물을 임차해 사용한다. 김정완 회장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아껴 써야 한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절약이 몸에 배었다. 그는 사옥 대신 연구 생산시설에 투자했다. 매일유업은 평택, 경산, 광주, 영동, 아산, 청양, 상하 공장 등 7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평택에는 200여명이 근무하는 중앙연구소도 있다.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 사옥 '아지트'

아이에스동서는 건설을 본업으로 하면서도 사옥이 없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권혁운 회장은 사옥 건설 비용을 '죽은 돈'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업의 현금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옥 지을 돈이 있으면 차라리 사업에 투자한다는 게 권 회장의 지론이다. 현금 흐름을 중요하게 보는 배경에는 권 회장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권 회장은 1980년대 초반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딸아이 책상에 있던 탁상시계까지 빨간딱지가 붙었다. 아이에스동서가 '부채비율 100%를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철저히 자금 관리를 하는 이유다. 건설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도 사업 다각화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동서산업, 한국렌탈, 영풍파일 등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때를 놓쳐, 운이 없어 사옥을 장만하지 못했지만 ‘내 사옥 마련’의 꿈을 접고 업무에 전념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카카오 판교 신사옥 ‘아지트’는 '직장인의 꿈의 사옥'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지트'의 실제 건물주는 따로 있다. 카카오는 2020년 4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10년 임대차 계약을 맺고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 '알파돔시티' 6-1블록에 둥지를 틀었다. 카카오는 전 층을 수직 계단으로 연결해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북 아지트, 야외테라스, 카페, 양호실, 마사지, 수면실, 사내 식당 등도 있다. 아지트에는 카카오 본사를 비롯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증권, 카카오벤처스, 카카오임팩트, 카카오헬스케어 등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카카오는 사옥 소유를 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판교 토지 매입에 거듭 고배를 마시고 사옥 건설의 꿈을 잠시 접었다. 카카오 관계자는 "판교에 직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를 찾기 어렵고, 또 판교를 떠나기도 쉽지 않다"면서 "지금은 사옥보다 사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IT부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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