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올해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를 펄펄 끓이고 있는 이상 폭염이 '반도체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관심이 쏠린다. 수력 발전에 공업용 전기를 의존하는 중국 남부 지역 반도체 산단이 전력 부족 현상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반도체 공정은 대량의 용수를 사용하는데, 저수지가 마를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대차증권은 22일 내놓은 일일 보고서에서 최근 중국의 폭염, 폭우 등 기상이변 이슈를 언급했다. 정진수 분석가는 "매년 이맘때쯤 중국에서는 폭염, 폭우 등 기상이변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라며 "실생활에도 영향이 크지만 더 나아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기 힘든 변수"라고 설명했다.
이미 중국 남부 지역은 평년보다 약 3개월 길게 건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뭄 현상이 나타나면서 수력 발전량도 급감했다. 중국 남부 지역은 싼샤 댐 등 수력 발전에 공업용 전기를 의존하고 있으며, 이 지역 일대에는 태양전지판용 반도체를 제조하는 산업 단지가 몰려 있다.
보고서는 폭염에 영향을 받는 산업군으로 전력 수요가 높은 중공업뿐만 아니라, 농업과 반도체도 꼽았다. 정 분석가는 "농산물은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품이고,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전력난 쇼티지(부족)를 이미 한 차례 경험했다"라며 "전력 수급 비상인 쓰촨성 일대 반도체 가동 상황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려 요소는 전력뿐만이 아니다. 폭염이 지속돼 저수지가 마를 경우, 반도체 공장이 용수를 공급받지 못해 가동을 멈출 위험도 있다.
인간 머리카락 굵기만 한 나노미터(nm) 단위의 초미세 공정을 수행하는 반도체 공장은 입자 단위의 먼지 한 톨조차 치명적인 불량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자원을 초순수로 정수해 기판을 세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서 거치는데, 이 과정에 쓰이는 용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이미 가뭄은 반도체 공급망의 주요 불안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 본사가 있는 대만은 2021년 최악의 가뭄 사태를 겪으면서 공장 가동률이 큰 폭으로 떨어질 뻔했다.
올해에도 대만의 주요 산업단지 강우량은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며, 현재 대만 정부와 TSMC는 고강도 수자원 저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올해는 엘니뇨 현상의 재현으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 폭염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지난 3년 동안 라니냐로 인해 지구 기온 상승에 일시적 제동이 걸렸는데도 우리는 기록상 가장 따뜻한 8년을 보냈다"라며 "엘니뇨 발생 시 온난화는 가속화하고, 지구 기온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