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필기자
검찰이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핵심 의혹인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내란음모 혐의를 제외한 것은 현 단계에서 범죄 소명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관련 수사를 위해선 신병 확보가 전제돼야 하는데, 검찰은 이를 위한 타개책으로 '정치관여'를 꺼내 들었다.
계엄령 문건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병주)가 31일 조 전 사령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시한 죄목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정치관여다. 앞선 2018년 9월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체포영장에 명시된 내란음모죄는 이번 청구서에 포함하지 않았다.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직권을 남용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성립한다.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이 2016년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와 관련해 부하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행위가 이 법률에 위배된다고 봤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2017년 국정농단 사건, 2018년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계기로 정치·사법·행정 전 영역에 걸쳐 검찰권을 관철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법원이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검찰은 최근 적용 폭을 줄이는 추세다.
검찰은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만으로는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은 구속 사유를 심사함에 있어 범죄의 소명 여부와 중대성 등을 우선 고려한다. 직권남용권리행사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 기조상 범죄 중대성을 인정받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다.
조 전 사령관이 계엄령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위선에 보고해 내란을 음모한 혐의에 대해선 범죄 소명이 어렵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조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계엄령 문건은 실행 계획이 아닌 단순 검토 문건이었다"며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결국 범죄의 중대성을 피력할 대안으로 정치관여 혐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관여죄는 군인이나 군무원이 불법으로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을 했을 때 성립한다. 5년 이하 징역과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된 중범죄다.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이 2016년 기무사 요원들을 동원해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칼럼·광고를 게재한 행위가 군형법상 정치관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정치관여 혐의를 꺼내 든 것은 우선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겠다는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검찰은 조 전 사령관으로부터 문건 작성 지시를 받았다는 소강원 전 참모장의 유죄 판결문 등을 검토하며 내란음모 적용 가능성을 따져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31일 오전에 열린다. 조 전 사령관의 경우는 사후구속영장에 해당하는 만큼 별도의 구인영장 집행 절차가 없이 곧바로 구속 심사대에 세울 수 있다. 조 전 사령관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31일 늦은 오후께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