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소설가들이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옛사랑에 연연해하는 것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꽤나 작위적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옛사랑과 현재의 무관심 사이의 이런 대비는 - 대화 도중에 언급되는 이름이라든지, 서랍 속에서 다시 찾아낸 편지, 또는 당사자와의 만남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소유하는 일 등 그 무수한 구체적인 디테일들로 우리가 자각하게 되는 대비 - 소설 작품 안에서는 너무나 가슴 아프고 눈물을 철철 흘리게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이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바로 현재 우리들이 무관심과 망각에 빠져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사랑했던 여인이 기껏해야 미학적으로 밖에는 더 이상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며,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워하던 마음마저 사랑과 더불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대비가 주는 비통한 우울함은 단지 정신적인 진실일 뿐이다. 정신적 진실이 또한 심리적인 현실로 되기 위해서, 작가는 사랑이 끝난 후가 아니라 자신이 묘사하는 열정이 시작되는 시기에 이를 위치시켜야 하리라.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또는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우리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 매일 그 여인 생각에 빠져 살지만 언젠가는 여느 여인네들만큼이나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이라는 통찰력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녀의 이름을 들어도 관능적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몸을 떨지 않고 그녀의 편지를 보게 될 것이고, 거리에서 그녀를 잠깐이라도 스치기 위해 가던 길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그녀를 마주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녀를 소유한다 한들 흥분하지 않으리라. 그럴 때면 이런 확실한 통찰력은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거라는 터무니없고 그토록 강렬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울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신비롭고도 서글픈 신성한 아침 해 마냥 여전히 우리 머리 위로 떠오를 그런 사랑은 우리의 고통 앞에 거대한 지평선 같은 것을 펼쳐놓으리라. 사랑의 지평선은 이상하고도 아득한데, 여기에 황홀케 하는 비탄이 약간 섞여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이건수 옮김, 민음사,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