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X파일]'라떼는 국회가'…이순재·최불암·강부자

⑦1992년 총선, 유명 연예인 국회의원 당선
이순재·이주일, 지역구…최불암·강부자, 전국구
길지 않았던 의정경험, 여의도 떠나 친정으로

편집자주‘정치X파일’은 한국 정치의 선거 결과와 사건·사고에 기록된 ‘역대급 사연’을 전하는 연재 기획물입니다.

2023년 현재, 최고의 인기 연예인인 BTS나 임영웅이 선거에 출마한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면서 단숨에 선거의 관심을 독점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특정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가수나 배우들에게는 위험 요인이다. 정치색이 덧씌워지는 순간, 경쟁 정당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출마 얘기를 농담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연예인 영입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이를 둘러싼 관심이 뜨거웠다. 만 40세가 되지 않은 연예인은 대선 출마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유명 배우나 가수가 선거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금도 중요한 선거운동을 하게 될 경우 평소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이 찬조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TV에서 보던 얼굴을 유세 현장에서 보면 대중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배우 이순재가 2018년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린 영화 '덕구' 제작보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당 입장에서는 흥행 보증 수표다. 그렇다면 유세장에서의 바람잡이 역할에 머물지 않고, 직접 출마하는 경우는 없을까. 이른바 ‘삼김 정치’ 시대가 이어지던 1992년 3월24일 제14대 총선에서는 당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들이 직접 출마해 화제를 일으켰다.

주인공은 이순재, 최불암(본명 최영한), 이주일(정주일), 강부자 등이다. 1934년 북한 회령 출신인 배우 이순재는 서울 중랑구갑 지역구에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로 나섰다. MBC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최민수) 아버지로 나와 장년층의 폭넓은 인기를 끌었던 시기다.

이순재 후보는 4만6297표(득표율 48.71%)를 얻으면서 민주당 이상수 후보(44.75%)를 꺾고 당선됐다. 중랑구는 당시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는데 이순재 후보의 국민적인 인기를 토대로 민자당에 승리를 안겼다.

제14대 총선에서는 또 한 명의 유명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코미디계의 전설 이주일이다. 1940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인 정주일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민당(국민당) 후보로 경기 구리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2만5751표(45.34%)를 얻어 민자당, 민주당 후보를 모두 꺾고 당선됐다.

1992년은 전원일기의 영원한 회장님, 배우 최불암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해다.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최영한이라는 본명으로 국민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최불암은 전국구 5번으로 당선됐는데, 당시 국민당 전국구 3번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2018년 10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전국후원회장인 배우 최불암 씨가 발언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역대 총선 가운데 제14대 총선이 특별한 이유는 탤런트와 코미디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인물이 한꺼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점이다. 14대 총선은 대선과 총선이 1992년, 같은 해에 열린 관계로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기다.

이순재, 최불암, 정주일 의원이 한꺼번에 국회 본회의장에 올랐던 제14대 국회. 또 한 명의 유명인이 국회의원으로 합류했다. 194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배우 강부자다. 그는 대선을 거치면서 전국구 의원이 사임한 자리를 물려받아 국민당의 새로운 전국구 의원이 됐다. 총선 때는 당선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지만, 결국 제14회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정치에 합류한 유명 연예인들의 고민은 높은 관심만큼이나 부담감도 크다는 점이다. 다른 의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작은 실수도 더 크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뜻한 바가 있어서 정치를 더 이어가려고 해도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최불암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도전했지만 3만3020표(32.49%)의 득표율에 머물면서 낙선했다. 당시 최불암(후보 이름 최영한)을 꺾은 인물은 현재도 국회의원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1996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김민석 의원은 4만9657표(득표율 48.87%)를 얻어 당선됐다.

“배우나 가수가 정치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대중의 편견 속에 의정활동을 이어갔던 유명 연예인들. 국회의원이 될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들이 정계에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 출신 의원들은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더해 친정인 방송 연예계 쪽의 러브콜까지 이어지면서 여의도 정가를 떠나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들의 굵고도 짧았던 의정활동 경험은 마무리됐다.

이슈1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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